
클라리스 쏜 지음, 송경아 옮김/여이연·2만3000원 진보적인 부모님 아래서 독립적이고 이성적이며 페미니즘적인 인생관을 물려받았다. 성에 대해서도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교육을 받아 사춘기 때부터 성적 호기심에 대해 자유로운 탐색을 해왔다. 그런데 스무살 즈음 육체적 고통을 받는 것에 쾌락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피학적 페미니스트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한국에서는 아직 미답의 땅에 가까우며 외국에서도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인 비디에스엠(BDSM·Bondage, Discipline, Sadism and Masochism)에 관한 책이다. 클라리스 쏜이라는 필명으로 블로그에 자신의 성적 지향에 관한 글을 쓰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저자는 이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 지배와 복종이라는 성적 테마가 페미니즘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그리고 다자연애(폴리아모리), 픽업아티스트 등 논란의 이슈에 관한 견해를 정리했다. 페미니즘 지형에 격변을 가져온 #미투 전인 2010년 전후로 쓰였고 또 다소 파편적인 블로그나 잡지 게재글 묶음이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지금 여기서 이 ‘난감한’ 주제의 봉인을 해제하는 도구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제는 리디아 로렌슨이라는 본명을 가지고 칼럼니스트이자 성 긍정활동가로 활동하는 저자이지만 페미니스트임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마조히스트적 성적 지향을 깨달으며 느꼈던 혼란과 이를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순간까지의 두려움을 고백하는 글로 책의 문을 연다. 물론 저자가 이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성적지향에 대한 집요한 탐색의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동력은 “에스엠(SM)이에요”라는 고백을 듣고 “그렇구나” “넌 네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라고 각각 반응한 아빠와 엄마의 지지였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책을 읽어나가며 우선 깨닫는 건 비디에스엠의 세계가 흔히 말하듯 가학-피학으로 이분할 수 없는 복잡계라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들은 마조히스트(고통을 즐기는 사람)지만 서브미시브(복종을 즐기는 사람)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체벌이 많이 따르는) 훈육을 좋아하지만, 본디지(로프, 우리 등등)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사디스트(감각에 고통을 주고 싶어한다)이지만 도미넌트(지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위치다.” 스위치는 이 역할과 저 역할을 오갈 수 있는 사람들로 저자도 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상대방에게 맞거나 머리채를 휘어잡혀 울면서 쾌락을 느낀다는 건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책 뒷부분에 저자가 한 독자에게 지적 받은 ‘육체의 배신’, 즉 성적으로 학대받는 사람들이 학대상황에 연결된 흥분은 여전히 여성학대의 가해자들이 흔히 악용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저자는 학대와 성적지향으로서의 지배-복종 행위는 명백히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구분하는 기준도 일반적이고 통념적인 성애의 기준과 다르지 않다. 즉 ‘예스 민스 예스’라는 것이다. ‘성인간의 합의 하에 이뤄지는 성적 행위는 무엇이든 괜찮다’는 게 저자의 논지다. 또 그 동의는 단순한 한 번의 예스가 아니라 ‘계속 변화하며 진행되는 협상 과정’이다. 이성에게 키스에 동의했다고 섹스를 허용하는 게 아니듯이, 에스엠도 끊임없이 섬세하게 상호소통하며 교감과 쾌락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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