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김유정문학촌 3대 촌장 이순원 작가
소설가 이순원은 올 초 강원도 춘천 김유정문학촌장으로 부임했다. 김유정문학촌은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 출신으로 ‘동백꽃’ ‘봄·봄’ 등의 단편을 통해 고향 실레마을을 한국문학의 지도에 확고하게 새겨 넣은 작가 김유정(1908~1937)을 기려 2002년에 만든 시설이다. 원로 소설가 전상국이 개관 이후 2018년 7월까지 장기간 촌장을 맡아 지금의 문학촌 틀거리를 만들었다. 시인 김금분이 그 뒤를 이어 2대 촌장직을 맡았고, 이순원이 3대 촌장이다. 김유정문학촌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연간 100만명이 찾을 정도로 성공한 문학 관련 시설로 꼽힌다. 촌장으로 부임해 바쁜 가운데 이순원은 최근 장편소설 <춘천은 가을도 봄>을 출간했다. 1991년에 냈던 <우리들의 석기시대>를 대폭 개작한 작품으로, 1970년대 말 춘천에서 보낸 대학 시절의 경험과 추억을 흠뻑 담았다.
“평소 저는 춘천에 와서 연필 깎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곤 합니다. 춘천은 문학적 낭만이 가득한 도시예요. 가장 문학적인 음료라 할 미제 커피가 있었고, 겨울이면 늘 안개가 끼는 공지천이 있어서 굉장히 아늑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었죠. 제가 대학 시절 스승도 없이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춘천이 주는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죠. 한수산과 이외수 같은 선배 작가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구요.”
지난 14일 김유정문학촌에서 만난 이순원은 “춘천이 아니었으면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춘천은 가을도 봄>의 주인공 진호의 캐릭터에는 작가의 모습이 진하게 투영되었다. 경영학도였던 그가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비롯한 작품들을 필사하며 소설 창작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린 대목은 이순원 자신의 경험 그대로다.
“나는 닥치는 대로 읽고 그중 일부를 내가 쓰는 작품인 양 원고지에 그대로 베껴 써보곤 했다. 누가 그렇게 해보라고 알려준 것도 아닌데, 지금도 그때 눈이 아니라 연필심을 타고 올라와 손끝으로 전해지던 몇몇 작품의 감동은 쉬 잊히지 않는다. 이론으로라도 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거나 따로 동아리에 가입한 적도 없이 혼자 갈 길을 정해 나선 내게 그것들은 그대로 스승이었고 은사들이었다.”
1991년에 냈던 <우리들의 석기시대>는 배경이 서울이었지만, <춘천은 가을도 봄>에서는 무대를 춘천으로 바꾸었다. “돌아보면 얼룩조차 꽃이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낸 춘천에 대한 감사와 헌사로 이 소설을 바친다”고 그는 ‘작가의 말’에 썼다. “학생들의 교련 반대 운동, 경찰의 학원 사찰, 학보사 기자들이 검열에 짓눌리면서도 진실을 보도하고자 분투하던 이야기 등은 내가 대학 시절 직접 겪었거나 가까이에서 목격한 일들”이라고 그는 말했다. 소설에서는 미군 아버지와 기지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여대생 주희와 진호 사이의 연애도 비중 있게 묘사되는데, 작가는 “친했던 혼혈 여학생이 있기는 했지만 소설에서처럼 연인 관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91년 초기작 ‘우리들의 석기시대’
대학 다닌 춘천 무대로 대폭 개작
“춘천 문학적 분위기에 소설 눈떠
고향 강원도 배경 작품들 평 좋아” “김유정 학술상 만들고 논문 디비로”
3~4월 동백꽃 축제 연례화 구상 “어렸을 때 김유정 선생의 소설을 읽을 때에는 소설 속 봉필영감이나 점순이 같은 인물들이 곧바로 대관령 아래 우리 마을의 특정 인물들에 대입되어 이해되곤 했어요. 작가가 자신의 태생과 관계된 이야기를 쓸 때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제가 처음 강원도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니까 주변 사람들이 거기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하더군요. 그렇지만, 결국은 ‘말을 찾아서’나 ‘은비령’, <아들과 함께 걷는 길>처럼 고향 강원도를 배경으로 쓴 작품들이 독자들의 사랑도 받고 문학적으로도 의미를 지닌다는 게 확인되었죠.” 김유정문학촌은 복원한 생가와 전시관, 이야기집, 체험관 등 시설을 운영하고 김유정문학상과 문학캠프 등을 주관한다. 김유정기념사업회, 김유정학회 등과 협업 관계인데, 이순원 촌장 부임 이후 김유정문학상 운영 주최를 둘러싸고 전상국 초대 촌장 및 김유정기념사업회 쪽과 분란이 일었다. 이 촌장은 “지난 4월 김유정기념사업회가 특허청에 ‘김유정문학상’ 상표등록 출원을 냈지만 6월11일 기각되었다”며 “이로써 김유정문학상을 둘러싼 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유정문학상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서 최고의 문학상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김유정학술상을 제정해서 학자들의 연구를 격려하고자 합니다. 김유정을 다룬 석박사 논문이 수백 편인데, 지금 문학촌에 비치된 건 서너 편뿐이에요. 우선 논문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도록 하는 게 가장 시급하게 할 일입니다.”
이 촌장은 그와 함께 “김유정 선생의 기일이자 그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동백꽃(생강나무꽃)이 피는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지역 문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하는 ‘동백꽃축제’를 연례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역 문인들이 출퇴근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집필실을 제공하고, 지역 작가 및 문학 지망생들을 상대로 기성 작가가 상주하며 도움을 주는 문학 상담소도 운영하며, 전시관도 다시 꾸밀 계획이다.
“김유정문학촌의 주소가 신동면 김유정로입니다. 문학촌 가까이에는 김유정역이 있고 김유정우체국도 있으며 농협 김유정지점도 있습니다. 마을 곳곳에 김유정 선생의 이름과 작품 및 주인공 이름을 딴 상호들이 있습니다. 가히 마을 전체가 김유정 마을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예요. 한 작가의 작품이 지역민의 삶과 어우러지는 사례로서 외국에 자랑할 만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의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에 못지 않게 이런 현상을 알리고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에도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춘천/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최근 <춘천은 가을도 봄>을 펴낸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최재봉 선임기자

대학 다닌 춘천 무대로 대폭 개작
“춘천 문학적 분위기에 소설 눈떠
고향 강원도 배경 작품들 평 좋아” “김유정 학술상 만들고 논문 디비로”
3~4월 동백꽃 축제 연례화 구상 “어렸을 때 김유정 선생의 소설을 읽을 때에는 소설 속 봉필영감이나 점순이 같은 인물들이 곧바로 대관령 아래 우리 마을의 특정 인물들에 대입되어 이해되곤 했어요. 작가가 자신의 태생과 관계된 이야기를 쓸 때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제가 처음 강원도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니까 주변 사람들이 거기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하더군요. 그렇지만, 결국은 ‘말을 찾아서’나 ‘은비령’, <아들과 함께 걷는 길>처럼 고향 강원도를 배경으로 쓴 작품들이 독자들의 사랑도 받고 문학적으로도 의미를 지닌다는 게 확인되었죠.” 김유정문학촌은 복원한 생가와 전시관, 이야기집, 체험관 등 시설을 운영하고 김유정문학상과 문학캠프 등을 주관한다. 김유정기념사업회, 김유정학회 등과 협업 관계인데, 이순원 촌장 부임 이후 김유정문학상 운영 주최를 둘러싸고 전상국 초대 촌장 및 김유정기념사업회 쪽과 분란이 일었다. 이 촌장은 “지난 4월 김유정기념사업회가 특허청에 ‘김유정문학상’ 상표등록 출원을 냈지만 6월11일 기각되었다”며 “이로써 김유정문학상을 둘러싼 논란이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순원 김유정문학촌장. 최재봉 선임기자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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