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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웅덩이에서 태평양을 보는 법

등록 2020-07-24 05:01수정 2020-07-24 21:18

[책&생각] 정인경의 과학 읽기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2

트리스탄 굴리 지음, 김지원 옮김/이케이북(2020)

물은 지구에서 마법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생명의 모태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얼핏 보기에 단순한 분자 H₂O인 것 같지만 과학자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미지의 대상이다. 우리는 물이라고 하면 대개 분자구조보다는 비, 강, 호수, 바다에 흐르던 액체를 떠올린다. 장마철의 비 냄새, 웅덩이에 일렁이는 잔물결, 해변에 밀려오는 하얀 포말과 파도 소리가 아름다운 한때의 추억과 함께 피어오른다.

탐험가이며 작가인 트리스탄 굴리는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2>에서 우리의 심상을 흔드는 물의 매력을 탐색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때만 진실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 사이에서 자연을 느끼는 감각이 살아나기 마련이다. 트리스탄 굴리는 물에서 발견되는 패턴과 신호를 통해 그 물리적 원리를 매혹적으로 설명한다. 웅덩이의 계보, 파도 위의 거품, 밤의 물, 물의 색깔, 물의 소리, 파도 읽기, 해류와 조수, 물 튀김과 솟구침 등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중에서 물의 소리에 주목해보자. 시냇물은 졸졸졸 흐르고, 파도는 철썩철썩 바위를 때린다. 이렇게 물의 소리는 다르게 들리지만 소리가 나는 원리는 같다. 물이 부서지면서 공기가 섞여서 물소리가 만들어진다. 시냇물은 바위를 넘어오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공기와 섞이지 못해 물거품으로 사라진다. 바다에서도 같은 원리로 파도가 부서지면서 하얀 포말이 흩날리는 것이다. 넓은 물 위에 바람이 불어 물거품이 나는 파도를 형성하는 곳은 태양계에서 오직 지구뿐이다.

해변에 서 있으면 파도가 밀려와 부드러운 거품이 발을 간질이고 밀려나간다. 지구에 알록달록 색깔을 더하는 바다의 물거품은 대체로 하얀색으로 보인다. 바다가 아닌 강과 폭포의 물거품도 하얀색이다. 심지어 콜라와 맥주의 거품도 하얗다. 왜일까? 색깔이 있는 물체를 미세한 가루로 분쇄하면 하얗게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빛이 작은 입자에 부딪혀서 각기 다른 색을 반사한다. 이 색깔들이 우리 눈에 도달할 즈음에는 모두 뒤섞여서 백색광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는 무슨 색깔일까? 당연히 파란색일 것 같지만 물의 색깔을 이해하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자신이 어디에서 물을 보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물 바로 위에서 볼 때와 멀리 떨어져서 볼 때 물의 색깔은 달라진다. 바다를 웅덩이로 대체해서 실험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웅덩이에서 스무 걸음 정도 물러나면 물 자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멀리서 본 바다는 바닷물이 아니라 하늘이 반사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화창한 날의 파란색 바다는 구름 낀 날에 회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지구의 물리법칙을 따르는 웅덩이와 바다는 예측가능한 물의 행동 양식을 보여준다. 우리는 웅덩이에서 얻은 실마리로 태평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의 아름다움을 뛰어난 관찰력으로 재발견한다. 달빛에 반짝이는 강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그냥 물이 아니었음을, 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 그 무엇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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