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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라틴어로 옮긴 ‘중용’, 중국과 서양의 사상적 만남 중심이 되다

등록 2020-07-31 04:59수정 2020-07-31 09:32

고전문헌학자 안재원, 예수회 선교사 인토르체타 번역본 판독·주해
유교 고전의 라틴어 번역이 서양 계몽주의 발흥에 끼친 영향 밝혀

인토르체타의 라틴어 중용
프로스페로 인토르체타 역주, 안재원 편역주/논형·3만5000원

1688년 8월7일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중국의 황제 강희제에게 편지를 보냈다. 중국 황제를 “가장 고귀하고 가장 뛰어나며 가장 강력하고 가장 고결한 무적의 군주, 나의 귀하고 선한 친구”라고 부르는, 라틴어로 쓰인 이 편지는 강희제의 도움으로 책 한 권이 출간됐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17세기 동서 문명교류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진귀한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이 편지에 등장하는 책이 한 해 전 파리에서 예수회 선교사 필리프 쿠플레가 라틴어로 출간한 <중국인 철학자 공자>라는 책이다. 중국의 고전 ‘사서’ 가운데 <중용> <대학> <논어>의 라틴어 번역본과 ‘공자의 생애’, ‘중국 왕조 연표’를 덧붙이고 ‘서문’을 앞세운 이 책은 중국 사상의 서양 전파와 17세기 동서 사상 교류를 증언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중국의 사상체계와 서양의 사상체계가 전면적으로 비교된 최초의 문헌으로도 꼽힌다. 그동안 이 책은 쿠플레의 저작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서양고전문헌학자 안재원 서울대 교수가 펴낸 <인토르체타의 라틴어 중용>은 쿠플레가 낸 책이 사실은 쿠플레의 동료 선교사 프로스페로 인토르체타(1625~1696)의 책을 저본으로 삼아 편집한 것임을 문헌학 연구 방법을 통해 확증하는 뜻깊은 저술이다. 안재원 교수는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인토르체타의 ‘라틴어 원본’의 필사본을 입수해 그 원문을 판독하고, 쿠플레의 <중국인 철학자 공자>와 비교해 쿠플레의 책이 인토르체타의 원본을 편집한 것임을 밝혀냈다. 동서 사상의 전면적인 만남을 보여주는 첫 문헌의 저작권자가 인토르체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인토르체타의 라틴어 중용>은 이 ‘인토르체타 필사본’ 가운데 <중용> 번역본에 해당하는 라틴어 원문을 싣고, 한국어 번역문과 상세한 주해를 붙인 책이다.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28살 때 예수회 사제 서품을 받은 인토르체타는 1659년 동료 쿠플레와 함께 중국에 들어가 선교 사업을 하면서 중국 고전 ‘사서’의 번역을 기획하고 출판했다. 이 사서 가운데 <대학>과 <논어>는 선임자였던 이그나치오 다 코스타가 먼저 번역했고, 코스타가 죽자 인토르체타가 선임자의 일을 이어받아 <중용>을 번역했다. 인토르체타는 1669년 이 고전 번역본을 인도 고아에서 활자본으로 출간했다. 쿠플레는 이 고아 활자본을 바탕으로 삼아 <중국인 철학자 공자>를 파리에서 출간했다. 쿠플레본의 편집 과정에서 큰 변화도 생겼는데, 인토르체타의 원본에는 <중용>을 번역하면서 쓴 ‘보론’ 8편이 들어 있었으나, 쿠플레는 이 보론을 모두 생략했다. 쿠플레 편집본의 일차 목표가 루이 14세에게 헌정하는 데 있었으므로, <중용> 이해에 방해가 되는 보론을 생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인토르체타가 사서를 기획하고 번역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토르체타가 쓴 서문은 ‘중국 선교를 희망하는 젊은 예수회 신부들이 중국의 사상을 손쉽게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것’이 고전을 번역한 이유임을 알려준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회의 선교 전략과 관련이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예수회는 16세기 말 마테오 리치가 중국 선교에 나설 때부터 ‘적응주의’를 기본 전략으로 택했다. 문명국가 중국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려면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 적응주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 ‘보유론’이었다. 보유론이란 기독교 사상과 서양의 학문으로 유교의 가르침을 보충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유가 경전을 철저히 공부해 중국의 전통 사상과 문화를 잘 이해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중국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찾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가 경전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길을 찾으려 했다. 인토르체타가 <중용>을 번역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중용>의 가르침을 통해 기독교를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인토르체타가 <중용>을 번역하도록 자극을 준 더 직접적인 사건도 있었다. 17세기 중국 선교사 집단에서 벌어진 ‘전례 논쟁’이었다. 예수회는 중국인들이 하늘과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일종의 문화적 관습으로 이해하고 이 전례를 용인했다. 그러나 뒤늦게 중국 선교에 뛰어든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은 중국인의 전례를 우상숭배 행위로 보고 예수회의 제사 용인을 비판했다. 전례 논쟁은 거의 100년 동안 이어졌는데, 로마 교황청은 이 문제를 두고 금지와 허용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인토르체타는 이런 혼란한 시기에 중국인의 전례가 미신적인 행위가 아니라 문화적인 행위임을 보증해주는 증거로 <중용>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마테오 리치를 포함해 적응주의 전략을 택한 예수회 신부들은 중국의 고전에 나오는 ‘상제’가 기독교의 ‘신’과 같다고 보았는데, 인토르체타도 그런 관점에 서 있었음은 물론이다.

인토르체타는 <중용>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용어를 사용하고 <중용>의 내용을 풀이하는 과정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용했다. <중용> 번역이 단순히 문자의 옮김이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이 서양 사상으로 옮겨지는 일이었음을 알려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번역 작업을 통해 중국 철학이 서양의 계몽주의 발흥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계몽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는 1721년 할레대학 부총장으로서 행한 연설(‘중국인의 실천철학에 대하여’)에서 <중용>을 인용해 자신의 계몽사상을 이야기했다. 또 이보다 앞서 중국 선교사였던 조아캥 부베는 인토르체타가 ‘라틴어 <중용>’에서 강조한 ‘이상적인 군주’를 모델로 삼아 1696년 프랑스어로 <강희제 전기>를 썼으며,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이 전기를 라틴어로 번역해 출간했다. 라이프니츠 번역본 서문은 이 책을 “거의 비교할 수 없는 군주의 모범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밝힌다. 중국의 유교 사상이 서양의 계몽군주론에 큰 자극을 주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lt;중용&gt;을 라틴어로 번역한 예수회 선교사 프로스페로 인토르체타. 논형 제공
<중용>을 라틴어로 번역한 예수회 선교사 프로스페로 인토르체타. 논형 제공

인토르체타가 펴낸 ‘중국 사서 번역본’ 필사본의 첫 쪽.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논형 제공
인토르체타가 펴낸 ‘중국 사서 번역본’ 필사본의 첫 쪽.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논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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