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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읽는 ‘모성’

등록 2020-08-21 04:59

숭배와 혐오: 모성이라는 신화에 대하여

재클린 로즈 지음, 김영아 옮김/창비·1만8000원

모성이라는 주제가 페미니즘의 독립적인 연구 분야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학자 재클린 로즈가 쓴 <숭배와 혐오>는 가부장제 아래서 구축된 모성의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지은이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근현대의 소설, 최근의 대중문화까지 아우르며 숭배와 혐오의 대상이 된 모성의 양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모성의 ‘전복적인 힘’을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확인하려고 한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지은이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이 책은 정신분석적 페미니즘을 모성의 재인식에 적용한 사례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모성의 양가성에 대해 처음으로 주목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부아르는 ‘여성은 자신의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존재를 자신이 창조했다고 생각하지만 태아는 자신을 잉태한 몸에 전혀 무관심하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여성이 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그 내부에서 스스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부아르는 임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태아는 여성 몸의 일부이자 여성을 착취하는 기생적 존재다.” 물론 보부아르가 임신과 모성을 나쁘게만 본 것은 아니고 어머니들이 느끼는 환희와 충족감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모성을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예속으로 간주하는 보부아르의 해석은 가끔 진정으로 혐오스럽게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지은이가 보기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어머니 되기는 결코 부정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기 안에서 타자를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어머니의 출산 행위를 낯선 이를 받아들이는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되는 것, 아이를 낳는 것은 이방인을 환대하는 행위이며 우리에게 가까운, 그리고 우리 자신의 낯섦과 가장 강렬한 형태의 접촉이 된다.” 바로 그런 모성의 경험은 모성적 관심을 넓게 확장할 가능성을 연다. 지은이는 말한다. “만약 모성을 통해 우리가 낯선 이와 접촉하게 된다면, ‘우리 가족’은 이 넓디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필사적으로 사수해야 할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아니게 된다.”

이 책이 그리스 비극 가운데 에우리피데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을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 비극에서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가 아들에게, 전사한 아들을 둔 아르고스의 어머니들을 대변할 기회를 달라고 말한다. 타국의 어머니들을 대신하여 전사한 아들들을 매장하게 도와 달라고 탄원하는 대목은 친족의 범위를 넘어 ‘어머니의 이름으로’ 올바름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다. 지은이는 오늘의 경우로 시선을 돌려, 2017년 4월 ‘맘스라이징’(MomsRising) 회원들을 포함한 어머니들이 워싱턴에서 자유의여신상 모형을 들고 행진하며 미국 정부의 잔혹한 이민정책과 강제추방 조처에 항의하고 정의와 연민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 시위를 거론한다. 모성이 타자를 품는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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