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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랑이란 연료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등록 2020-08-28 05:00수정 2020-08-28 17:20

박서련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셜리라는 이름의 여성들 이야기
국적과 세대 초월한 연대와 연결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첫 작품”
코로나 시대에 전하는 위로의 관계
한 권의 소설 카세트테이프처럼 구성
더 셜리 클럽

박서련 지음/민음사·1만3000원

소설 <더 셜리 클럽>을 펴낸 박서련 작가는 이번 작품을 두고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사진 돌배
소설 <더 셜리 클럽>을 펴낸 박서련 작가는 이번 작품을 두고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사진 돌배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그 문화적 배경에서보다 그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박서련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더 셜리 클럽>은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다. 20살 한국인 설희와 오스트레일리아 ‘셜리 할머니들’의 국적, 인종과 세대를 뛰어넘는 연결과 연대를 그린 작품이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이 있다. 음울한 코로나 시대에 전하는 희망가이자 사랑가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설희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서 시작된다. 설희는 그 지역 축제에서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모인 ‘셜리 클럽’의 행진을 본다. 영어 이름이 ‘셜리’인 그는 모임에 관심을 갖고 결국 클럽의 구성원이 된다. 그런 뒤 살펴보니 클럽 회원들은 모두 할머니. ‘셜리’라는 이름은 한국으로 치면 ‘자’나 ‘숙’으로 끝나는 옛날식 이름이기 때문에 젊은 회원이 없는 거다. 설희가 가장 어린 막내 회원이 된 셈이다.

셜리 클럽 회원들은 ‘재미, 음식, 친구’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시한다. 그들은 주말마다 집에서 모여 안 쓰는 물건을 나누고 빵과 과자를 같이 먹고 취미나 가족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땅에서 나이와 피부색을 떠나 경험을 함께하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말다툼을 한 설희에게 한 셜리 할머니는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판단하거나 끼어들 수 없는 마음의 매듭이 있다”는 걸 이해해준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공감과 이해의 자세로 설희에게 다가간 할머니는 자신의 가정사도 들려준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1900년부터 1972년까지 원주민개화정책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했던 그 당시 자신의 어머니는 백인 가정으로 입양됐었단다. 어머니는 성인이 된 뒤 친부모를 찾았다. 셜리 할머니는 어릴 때 “할머니를 미워하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할머니가 살아서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받는 식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어머니를 알게 됐단다. 가족이라도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이토록 어렵다.

소설에서 ‘셜리 클럽’은 이상적인 신뢰와 연대의 공동체를 상징한다. 그 공동체는 깊고 넓다. 각 나라에는 ‘셜리 클럽’의 지부가 있어서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가더라도 또 다른 셜리들이 설희를 따뜻하게 맞고 대가 없는 선의를 베푼다. 셜리가 또 다른 셜리를 우정으로 환대하고 진심으로 돌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더 셜리 클럽에 셜리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우리는 모두 셜리이고, 우리는 모두 셜리를 아끼죠. 부담 느끼지 말아요. 우리가 도울게요. 셜리를 돕는 게 우리를 돕는 거니까.”

설희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셜리 할머니들뿐 아니라 “보라색 목소리를 가진” “여자도 남자도 아닌 것 같은” 에스(S)를 만난다. 설희처럼 워킹홀리데이를 온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문화적 혼란을 겪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왔다. 에스는 자신의 어지러운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어느 나라의 국민, 시민이라는 감각 대신 ‘이민자’라는 제3, 제4의 정체성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설희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에스를 알아가고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풋풋하게 그려낸다.

목차가 사이드 에이(A), 사이드 비(B)와 트랙1, 트랙2 등의 차례로 되어 있고 본문에도 ‘잠시 멈춤’과 ‘재생’ 버튼이 번갈아 나온다. 잠시 멈춤 버튼 아래엔 설희의 독백, 재생 버튼 아래엔 이야기 진도가 나가는 식이다. 설희의 말 속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카세트테이프’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내가 생각하는 고백의 역사 한 자락은 카세트테이프예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을 선물하려 할 때에는 먼저 똑같은, 때로는 더 많은 시간을 써야만 한다는 걸 알려 주는 도구.” 더불어, 음악을 재생하는 듯한 구성 자체가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가수 설리를 떠오르게도 한다.

<체공녀 강주룡>(2018), <마르타의 일>(2019)을 펴냈던 박 작가는 26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더 셜리 클럽>은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워 쓴 이야기”라며 “사랑을 연료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를 그렸다”고 했다. 소설은 2013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작가의 실제 체험을 바탕삼아 썼다. “제 영어 이름도 셜리이고, 실제로 그곳에서 ‘셜리 클럽’이라는 모임을 봤어요. 그때 전 그 클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소설 속 설희는 그 클럽에 성큼 들어간 거죠.”

지난해 집필을 시작해 올 초 소설을 완성한 작가는 작업 후반부에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쳐 정신적으로 힘겨웠단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그 피로감과 힘겨움보다는 이 소설을 쓰면서 들었던 행복감이 먼저 다가가길 바란다. “이 소설은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지만 이걸 읽으며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하던 그 당시의 다정한 향수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소설을 통해 설희의 희망 여행을 독자들도 함께 떠나며 위로를 받았으면 해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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