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
김민준·정이숙 지음/동아시아·1만5000원
김민준 석좌교수는 “중학교 때 본 영화 <이너스페이스>처럼 ‘작은 로봇이 인체 안에 주입되어 암세포를 제거하고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기술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나노로봇공학이라는 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동아시아 제공
영화 <이너스페이스>(1987)는 인체
속 탐험을 다룬 에스에프(SF)다. 주인공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잠수정을 타고 몸속 장기를 구석구석 살피고 암세포를 제거한다. 말하자면 나노기술을 소재로 한 과학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때 ‘나노’(Nano)는 ‘소인’
을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나온 말로, 나노기술은 10억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 크기의 물체를 만들고 조작하는 것을 일컫는다.
최근 나노과학이 발달하면서 에스에프 영화에 등장하는 것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고치는 나노로봇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2017년 10월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 김민준 석좌교수팀은 세계 최초로 혈액 등 유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율적으로 형태를 변형하는 트랜스포머 나노로봇을 개발했다. 영화 <트랜스포머>처럼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로봇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이다. 김 교수는 2008년 미국 국립과학재단 젊은연구자상, 2016년 유네스코-넷엑스플로 10대 혁신기술상 등을 수상하며 과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는 에스에프적 상상력을 현실화한 김 교수의 삶과 연구 여정을 담은 책이다. 그의 연구실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공간 같다. 연구실에 있는 대부분의 로봇은 머리카락 두께인 0.15㎜보다 10~100배 더 작다. 눈에 보이지 않는 로봇을 제어할 땐 다양한 광학현미경과 3차원 전자기장 제어시스템인 ‘데스스타’를 이용한다. 이 이름 역시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전투용 인공위성에서 따온 것이다.
연구 아이디어는 자연에서 찾는다.
김 교수는 “자연을 깊게 들여다봐라. 그러면 모든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항상 곱씹는다. 그중에서도 주목하는 건 미생물인 박테리아다. 박테리아는 인간 머리카락 두께의 50분의 1 크기의 몸통에 1개 이상의 긴 나선 모양 편모를 가지고 있다. 이 편모 덕분에 박테리아는 이동할 수 있다. 그는 박테리아의 외형과 구조를 본떠 다양한 나노로봇의 디자인에 활용하고 그 운동역학의 원리를 탐구한다. 영화 <이너스페이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다. 앞으로 “나노로봇이 몸 안의 특정 부위에 약물을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양, 암세포를 제거하고 생체검사까지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책은 세계적 나노로봇공학자가 되기까지 지은이의 인생 여정도 보여준다. 완벽한 천재처럼 느껴지는 그는 사실 어릴 때부터 책 한 줄을 읽고 나면 다음 줄을 찾기 힘든 난독증을 앓았다. 그의 이런 증상을 눈치챈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건네준 30㎝짜리 자 덕분에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그는 가방에 자를 갖고 다니며 그것을 이용해 책과 논문을 읽는다. 그런 그가 나노로봇공학자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스승과 연구팀 동료들도 상세히 소개한다. 지은이와 더불어 미래 기술로 불리는 나노로봇공학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의 분투 과정까지 함께 엿볼 수 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동아시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