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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의 마을] 감자의 시

등록 2020-10-09 04:59수정 2020-10-09 07:49

감자의 시 이 기 성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보다 감자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는 검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등에 짊어진 것이 감자라면 좋을까, 검은 폭탄은 그의 머릿속에서 오래전부터 째깍째깍 수명을 줄여가고 있다. 그것은 곧, 폭발할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가 되느니 감자가 되는 건 어떨까

그는 가방을 지고 걷는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건 감자가 아니고. 그의 부모는 가난했으며 말 없는 감자의 형상에 가까웠다. 우린 최소한의 예의를 원합니다, 농성장에서 팔을 치켜든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늘고 연약했다. 구둣발로 툭 차면 데굴데굴 사방으로 굴러가는

감자의 언어를 오늘은 가르쳐줄 테다. 폭발을 기다리는 남자가 말했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에서라면 감자는 그저 감자일 뿐. 그러나 둥글고 희고 매끄러운 감자의 언어는 어쩐지 불안하다. 째깍째깍 어디로 굴러갈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러니 차라리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은 어떨까. 정각에 쾅쾅! 두 번의 거룩한 폭발음. 남자의 검은 머리가 농성장 한복판으로 굴러온다. 울퉁불퉁 배고픈 감자의 얼굴로

-시집 <동물의 자서전>(문학과지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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