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털한 아롱이
문명예 글·그림/책읽는곰·1만3000원
이 책은 (어른의) 예상을 두 번 깬다. ‘털털한’ 아롱이라는 제목에 ‘성격이 좋은 개인가 보네’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털이 많다’라는 의미라는 걸 깨닫고 머리를 긁적인다. “우리집 강아지 아롱이야. 아롱이는 털이 엄청 많고, 또 엄청 빠져…” 첫 장을 넘기면 나오는 누렁이를 보고 ‘아롱이가 날리는 털을 아이가 정리하는 이야기인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다 금방 얼굴이 빨개진다. “맨날 맨날 백천만개는 빠질 거야”라는 책 속 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야 하는데!
<털털한 아롱이>는 강아지의 털 한 올이라는 작은 소재에 ‘상상력 돋보기’를 들이대 유쾌한 풍경을 그리는 그림책이다. 상상력이 빈곤한 어른을 민망하게 할 정도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몸을 벅벅 긁으며 털을 풀풀 날리는 아롱이와 그 옆에 엎드려 그림책을 보는 아이의 모습은 평화롭다. 하지만 아이가 보는 그림책 속 동물들이 책 밖으로 하나둘씩 나온다. 아롱이의 ‘백천만개 털’이 집을 ‘털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털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끄떡없대!” 따끈하고 폭신한 털집이 있다는 소문이 숲 속에 퍼지니 동물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동물들이 한데 모이니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롱이는 ‘털왕’의 자리에 올라 흡족한 표정으로 몸을 흔든다. 백천만개의 털이 곳곳에 나풀거린다. 아롱이를 왕으로 섬기기로 한 동물들은 왕을 따라 다 같이 ‘털춤’을 춘다. ‘얄랑얄랑 털털털, 욜랑욜랑 털털털’ 털춤 잔치가 계속될수록 온갖 털들이 나부낀다. 수많은 ‘털들의 바다’가 펼쳐진다. 털이 온몸을 간질여도 이들은 즐겁기만 하다. ‘아이와 동물들은 또 무엇을 할까?’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 지극히 ‘어른스러운 질문’을 던져봐야 소용없다. 털 한 올에서 시작된 상상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리저리 계속 뻗어 나간다.
저자는 자신이 실제로 키우는 반려견 아롱이의 털을 매일매일 청소하다가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개나 고양이와 같이 사는 사람이라면 더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밝고 다양한 색깔을 사용해 자칫 단조롭게 보일 수 있는 털을 다채롭게, 따뜻하게 표현했다. 4살 이상.
이승준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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