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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언젠간 떠나야 하는 ‘집’…미아 같은 삶

등록 2020-12-04 05:00수정 2020-12-04 10:50

미아로 산다는 것: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매끼를 굶는 수준은 아니지만 삶에서 보장된 것이 없다. 많은 20대는 대기업과 공무원을 목표로 긴 시간 취업준비를 하거나, 조만간 관둘 중소기업에 다닌다. 사는 곳은 고시원이나 작은 원룸일 확률이 높다. 집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떠나야 한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얻고, 노르웨이에서 사는 한 지식인은 이들 20대가 자신처럼 ‘미아' 같다고 말한다.

사회비평 에세이인 <미아로 산다는 것>은 19년 전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탈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비판한 역사학자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동아시아학 교수)의 최신작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것이라고 부를 정도로 단일 민족국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은이는 “<포보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권력자 100명 중에 35위를 차지한 이재용도, 이재용 같은 사람에게 부를 만들어주느라 데이트 한 번 나갈 여력도 갖지 못하는 ‘3포 세대’ 젊은이들도 모두 ‘한국’에 속하지만, 서로 접점이 전혀 없는, 각각 완전히 다른 현실을 살아간다”며 “내게 과업이 있다면 왜 후자가 전자의 피해자가 되면서도 전자의 지배를 여전히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분석”이라고 썼다. 2018년 통계청 발표를 보면, 연애하는 대한민국 20대 남성의 비율은 20% 남짓이다. 착취만이 중요했던 시대가 지나, 불안으로 인한 소외를 혼자 감당하는 무산자를 살펴야 하는 때가 온 셈이다.

한겨레출판 제공
한겨레출판 제공

‘열공 올인’ 사회와 ‘출산율 제로’ 사회는 소외를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원해서 공부하는 대신, 신분상승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억지 공부는 자신에게 폭력이 된다. 노르웨이에서는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없다. 배관 일을 하든 교수 일을 하든 똑같은 노동으로 존중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기르기 어려운 상황은 청년을 비혼으로 내몬다. 노르웨이에선 회식은 없고 관공서는 3시에 일이 끝난다. 노동자는 5시 이후에는 집으로 돌아간다. 한국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약 18분이라면, 노르웨이 남성의 경우에는 2시간36분 정도다.

모든 것이 흐르는 물처럼 빨리 바뀌어 긴 관계를 맺기 어려운 사회인 액체근대.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은 길을 잃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와 닮았다. 여기서 ‘집'은 주거공간을 넘어, 심리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와 문화를 뜻한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지은이는 공감과 연대, 협력으로 ‘같은 마음’을 느끼려는 혁명적 정서가 대안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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