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거 같다. 사회 수업이었나, 그 당시 그 말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내 표현이 내 자유라는 거 당연한 거 아냐? 내 맘대로 떠드는 게 뭐 어때? 말이 누구한테 피해를 줄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훗날 <말이 칼이 될 때>라는 책을 낼 줄도 모르고…) 그런데 누군가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 정권 때 (딱히 민주화 투사도 아니었던 이가) 뭔 말을 했다고 잡혀가서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을 읽고서, ‘표현의 자유’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추구해야 하는 것이구나, 쟁취해야 하는 것이구나 깨달았었다. 그때부터 나는 표현의 자유 투사가 되기로 마음 먹…지는 않았지만.
또 한편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대상에게는 내 마음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드는 게 능사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 계기도 있었다. 내겐 어릴 적 소소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상대에겐 그렇지 않았을. 반지하 방에 세 가족이 모여 사는 친구에게 왜 그런 곳에서 사니, 너희 부모님은 일 안 나가고 뭐 하시니, 왜 너희 집은 이렇게 지저분하니, 심지어 이게 무슨 냄새니… 하고 물어봤다. 내 딴에는 친구가 걱정되고 해서 나온 질문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글에서 소개할 책 제목처럼 내 말은 그 친구에게 상처가 되고, 그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폭력이 됐을지 모르겠다는 후회 섞인 감정이 남았다.
시간이 흘러 난 말, 글, 표현, 메시지를 담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책이라는 상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서술한 간략한 경험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벌어진 여성 혐오 살인사건 때문에 나는 ‘혐오 표현’ 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했고, 책까지 기획 출간하게 됐다. 나부터 뭔지 궁금했던 이야기이고, 나부터 잘못된 행동과 태도를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에.
2013년 일간베스트 게시판이 문제가 되면서 한국 사회의 ‘혐오 표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홍성수 교수는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에는 더 다양한 기고글을 쓰고 강연을 했다. 법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법전만 떠올리고, 고시생만 떠올려왔던 내게 이 ‘소장 법학자’의 말들은 혐오, 표현의 자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통쾌한 발언이라기보단, 진지하게 곱씹고 이 문제를 명확하게 다각적으로 바라볼 만한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었다.
그에게 도대체 혐오 표현은 무엇인지, 왜 문제인지,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어떤 표현은 제한받아야 하는지, 제한이 아니라 더 크고 극적인 변화는 어려운지, 질문하는 책을 만들자고 제안하게 됐다.
표현의 자유를 연구하던 그 역시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옹호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규제돼야 하는 문제”라고 이야기했고. “이렇게 한계영역에 있는 문제만큼 학문적으로 흥미로운 것이 또 있을까?” 하며 대중서를 써줬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 차별, 표현의 전체 그림을 살피고, 함께 질문해보고 답을 구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꽤 쓸 만한 책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많은 독자가, 꽤 많은 언론이 주목했고, 커다란 상도 여럿 받았다. 그런 그가 다음 책으로 ‘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룬다고 하니, 많은 독자들이 기다릴 것으로 기대한다.
강태영 어크로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