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인형 작가 임수현의 <나의 살던 고향 옛 인형 일기>
인터뷰/<나의 살던 고향 옛 인형 일기> 낸 전통인형 작가 임수현씨
서울 삼청동 길가에 예스러운 대문과 소박한 전통인형 전시창을 갖춘 허름한 한옥이 눈에 띈다. ‘소연전통인형연구실’이란 간판을 단 한옥의 주인은 전통인형 작가 임수현(54)씨다. 정과 한을 지닌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누이, 그리고 할아버지, 아버지, 동네 아저씨들과 옛 친구들의 얼굴과 몸짓을 전통인형에 되살려내는 일을 해왔다.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해온 일이다.
그런 그가 ‘전문작가’라는 호칭엔 손사래를 친다. “아무런 재능도 배움도 없었지만 옛사람의 마음을 빚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인형들이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허리띠 졸라매고 밭 매는 어머니의 마음, 동생들 뒷바라지하려 재봉질하는 누이의 마음, 읍내장터에서 어머니께 끓어드릴 동태를 사들고 집에 가는 늦총각의 마음, 갓난아기를 업고 친정어머니 뵈러 가는 여인의 마음…. 이런 마음을 느끼고 담아내고 싶었지요.”
이렇게 만든 300여 작품의 사진, 그리고 인형들에 담긴 이야기 글을 모아, 그는 최근 <나의 살던 고향 옛 인형 일기>(한길아트 펴냄)를 펴냈다. 힘든 세상이라 해도 이날만은 모두 흐뭇한 설날 아침의 세배 풍경, 아기씨 업은 언년이, 모성애로 어린 남동생을 돌보고 가르치다 군에 보내던 날 마음 아팠던 누이, 꽃가마 탄 열아홉살 새색시, 높아진 하늘 아래 빨간 햇고추를 말리는 어머니, 사랑채 보이는 뒷마당 평상에 앉아 장기 두는 어르신들 등등, 지금은 사리진 옛 풍경들이 생생한 몸짓의 장면들로 담겼다. 여기에 인형들이 하나하나 태어날 때마다 인형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지은이가 남긴 섬세한 글들(그는 ‘인형들의 일기’라 한다)이 더해졌다.
임씨의 작품 주제는 무엇보다도 우리네 여인들의 마음이다. 어머니와 할머니, 누이의 모습에다 왕비, 의녀, 기생 등 여인들은 그의 인형 작품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나 어머니는 영원불변의 주제다. “그 시절 어느 집에나 일고여덟 명의 아이들이 자라났고 밤낮없이 윗집 아랫집에서 사갈사갈 재갈재갈 손재봉질 발재봉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만 뜨면 천을 떠다 아이들은 물론 시할머니, 시동생, 시누이 것까지 깁고 짓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도 내가 열세 살이 되도록 손수 옷가지를 지어 입혀주신 기억이 새롭다.…손공으로 마음을 지어주신 어머니의 성심을 새기다.”(111쪽)
‘20년 동안 300여 작품’이라는 숫자는 인형을 만드는 그의 지극정성을 엿보여준다. 20여년 전 그 시작은 33살에 갑자기 찾아왔다. 그는 그 때 일을 어떤 ‘계시’처럼 믿고 있다. “20여년 전 어느날 산책을 하다가 하늘을 보는 순간 ‘한국을 빚고 싶다’라는 간절한 한 모금의 소리를 나도 모르게 토해냈습니다. 아마도 하늘이 이런 독백을 듣고 지금껏 내가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옛사람들의 얼굴과 삶을 인형으로 빚어낼 수 있게 마음을 주신 것 같아요.” 흙으로 살을 빚고 속옷부터 겉옷까지 고증을 거쳐 옷감을 마련하고 때로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끊어 인형들의 머리카락과 눈썹·수염을 달기도 하지만 인형에 정과 한을 담아낼 수 있는 건 모두 ‘마음’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늘 ‘마음이 인형을 빚었다’고 말한다.
“앞으로 1800년대 조선시대 옛사람들을 빚을 계획입니다. 또 17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모든 어머니상을 구현하고 싶고, 나의 살던 고향인 왕십리의 추억을 빚어내고 싶고, 신분별로 달랐던 조선시대 여인들의 머리모양을 제작하고 싶고요. 한국천주교의 순교역사 전체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고도 싶습니다.” 그의 작품의 일부인 80여점을 서울 합정동 절두산 순교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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