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청춘: 어른 되기가 유예된 사회의 청년들
장 비야르 지음, 강대훈 옮김/황소걸음·8800원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사실 현대사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시간적으로 풍요롭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비야르는 <기나긴 청춘>을 통해 이 뜻밖의 사실을 증명한다. 1900년 서구인의 일생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50만 시간.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이 시간은 70만 시간까지 늘어났지만 노동 시간은 되레 줄었다. “우리 증조부가 살던 시대보다 4배 많은 ‘자유 시간’을 누리게 된” 배경이다.
여가 시간 확대에 관한 논의는 통상 ‘인생 이모작’ ‘신중년’ 담론으로 흐르지만, 장 비야르는 청년 담론으로 휙 방향을 튼다. 은퇴 이후 시간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도 덩달아 길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 청년들이 정규직으로 처음 입사하는 연령은 평균 29살이고, 평균 30.2살에 첫 아이를 낳는다. 법적 성년이 18살임을 감안하면 10년 남짓 모호한 정체성을 지니고 부유하며 보내는 셈이다.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준비와 유예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법적·사회적 지위를 부여하자는 게 장 비야르가 100쪽이 채 안 되는 이 얇은 책을 통해서 주장하는 바다. “오늘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전 세대처럼 결혼, 집, 정규직을 통해 자리 잡는 게 아니다. 이제 어른 되기는 불연속성과 불안정성을 중심으로 짜인 사회, 즉 변화와 단절, 새 출발의 능력을 요구하는 사회에 진입한다는 의미다.” 첫 입사만 하면 나머지 삶은 보장되던 과거보다 인생이 “시퀀스처럼” 분절되고 바뀌는 현대사회는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적응력을 요한다. 그런 만큼 이를 대비하는 시간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는 청년들에게 ‘사회적 배낭’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지은이는 그 구체적 방법론으로 ‘사회적 배낭’ 정책을 든다. 국가가 임금노동자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은퇴할 때까지 각종 사회 보장 혜택이 담긴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 배낭이 청년을 위해서도 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 비야르는 배낭 안에 총 5가지 꾸러미(16∼28살 청년을 위한 보편적 청년 수당, 각종 공과금과 보험 부담금 면제, 국내 여행 제도 등)를 담자고 제안한다. 유동하는 시대에 적응력을 갖춘 청년을 사회가 배출하기 위해서는 노동, 학업, 여행, 사랑 수업이 필요하다는 통찰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프랑스는 청년들이 첫 번째로 읽을 책”이기에 청년에게 500유로 상당의 ‘문화 패스’를 지급해 국내 여행을 의무적으로 하게 하자는 이색적인 제안에서는 프랑스인 특유의 모국에 대한 자부심도 읽힌다.
‘지망생’이란 불안정한 타이틀로 20대의 10년을 보내고, 직장을 잡은 뒤에도 이직과 전직, 겸직(n잡러)을 하는 청년들이 다수인 한국 사회에 생각할 거리를 적지 않게 던져주는 책이다. 반짝이는 통찰이 적지 않으나, 솟구치는 아이디어를 잘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느낌은 덜하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비야르. ⓒAlexandre Dupeyron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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