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지야 통 지음, 장호연 옮김/코쿤북스(2021) 곧 삼월이다. 2021년도 두 달이나 지나버리게 되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한탄이 나온다. 그때 어두움을 잠재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이번 주에 들은 가장 새롭고 좋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그것이 떠오르면 덧없지만은 않다. 오늘은 다행히 몇 개가 생각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리얼리티 버블>에서 읽은 이야기다. 게자 텔레키라는 영장류학자가 쉬는 날을 맞아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산등성이를 걷고 있었다. 그는 일몰을 바라보기에 완벽한 장소를 찾았다. 초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그는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거대한 아프리카 태양이 탕가니카 호수 위로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문득 텔레키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서로 반대되는 방향에서 성체 수컷 침팬지 두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산마루에 도착한 그들은 서로를 발견했다. 다 큰 수컷 침팬지 두 마리라니? 혹시 싸움이 벌어지려나? 그다음 일어난 일은 이렇다. 둘 다 뒷다리로 서서 몸을 꼿꼿이 세우고 곧장 걸어가 눈을 마주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헐떡거리며 손을 움켜잡았다. 침팬지들은 텔레키의 바로 앞에 앉았다. 세 명은 침묵 속에 함께 있었다. 침팬지들은 인간인 텔레키와 마찬가지로 앉아서 아름다운 석양을 즐기려고 그곳을 찾았다. 이 장면은 이렇게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나에게도 이와 약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수년 전 호주의 몽키미아라는 바닷가로 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내가 그곳에 간 이유는 돌고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몽키미아는 돌고래가 아침마다 마치 회사원이 정시에 출근하듯 나타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이길 바랐고 돌고래와 함께 아침을 맞는 영광을 누리고 싶었다. 그날 아침 나는 일찍 바다로 나갔다. 바닷물에 쓸려온, 죽었지만 여전히 이쁜 빨간 불가사리와 그날 아침 해변에서 가장 예쁜 돌, 가장 예쁜 조개껍데기로 모래사장을 근사하게 꾸미고 나만의 장식품들 옆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나도 텔레키처럼 문득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앗! 소리가 나는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커다란 분홍 펠리컨 한 마리가 바로 내 장식품들 옆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펠리컨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일까? 내 장식품이 펠리컨 눈에도 이뻐 보였을까? 어쨌든 나는 펠리컨이 날아가버릴까봐 손가락 하나 꿈쩍 못했다. 다른 좋은 이야기 한가지는 <한국방송>(KBS) ‘다큐인사이트’ 을숙도 편에서 들었다. 두 여인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있었다. 그 둘이 보는 것은 은하수 위에 펼쳐진 고니(백조)자리였다. 그들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고니자리는 위도가 낮은 곳에서 볼 수 있어. 우린 운 좋게도 부산에 살아서 고니자리를 볼 수 있어.” 나는 부산에 관해서라면 지난해부터 해운대 아파트 값과 가덕도 공항 이야기만 들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덕분에 내게 부산은 운 좋게도 고니자리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고니와 우리는 함께 고니별자리를 올려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덕도 공항이 철새 도래지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마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이야기가 없다면,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이야기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의 삶만 살게 될 것이다. 어떤 다른 삶이 가능한지 전혀 모르는 채로.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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