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
수자타 매시 지음, 한지원 옮김/딜라일라북스(2021)
추리소설이 연속 시리즈로 이어지려면 매력적인 탐정이 있어야 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날카로운 지성, 민첩한 행동력, 불운한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는 인류애, 사회의 불의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 보통 탐정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이런 특성을 나열하다 보면 머릿속을 스쳐 가는 여러 탐정이 있지만, 그 명단에 퍼빈 미스트리의 이름을 더해도 될 것 같다. 20세기 초의 봄베이(현재 뭄바이)를 배경으로 한 <말라바르 언덕의 과부들>의 주인공이다.
1921년의 봄베이, 퍼빈은 아버지의 법률사무소에서 사무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버젓한 변호사 교육을 받았지만 여자이기에 법정에서 변론하지는 못한다. 계급, 종교, 국적, 성별로 나뉜 집단이 교차하고 갈등하는 이 도시에서 퍼빈은 그를 둘러싼 단단한 벽을 넘으려 애쓴다. 이 벽은 은유적인 의미일 뿐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유한 무슬림 사업가인 오마르 파리드가 죽은 후, 세 명의 과부와 그들의 아이들을 위한 유산 집행 의뢰를 맡게 된 퍼빈은 저택 안에 격리된 그들을 찾아간다. 이는 ‘푸르다’라고 하는 관습으로 여성들은 같은 집에서도 남성과 칸막이벽으로 분리된 구역에 살며, 외부인과 접촉할 수 없다. 부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찾아간 퍼빈이 파리드의 재산을 좌지우지하려는 가족 대리인 무크리와 충돌한 직후, 이 외부와 차단된 저택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20세기 초 인도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묘사적인 설명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소설은 정통적인 추리 미스터리의 구조에 따라 쓰였다. 동기가 있는 다수의 용의자, 쉽게 알 수 없는 범행 방법,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에게 닥친 위협.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퍼빈은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때 만난 친구 앨리스에게서 기하학과 건축학에 대한 조언을 받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한다. 궁극의 범인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게 금지하는 전근대적 사회제도이기도 하다.
실존 인물 두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아 창조한 인도 최초의 여성 변호사의 삶을 통해 소설은 여성을 억압한 역사를 세밀하게 그린다. 월경이 찾아오면 외부인과 차단하여 불결한 독방에 일주일 동안 감금하는 관습이나 남편의 폭행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위치, 일부다처제와 불균등한 유산 배분 등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불평등은 소설의 배경이자 사건이다. 정확히 100년 전의 과거이지만, 이런 억압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성들의 입과 발을 대신해주는 여성 탐정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다.
퍼빈 미스트리가 주인공인 소설은 국내에는 이제 첫 권이 번역되었지만, 미국에는 이미 출간된 두 번째 권과 2021년에 출간될 세 번째 권이 있다. “여성의 힘을 위해” 일하는 이 변호사의 활약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기대해 볼 만하다.
작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