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의 천재들: 전 세계 1억 명의 마니아를 탄생시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성공 비결스즈키 도시오 지음, 이선희 옮김/포레스트북스·1만7000원
디즈니와 함께 애니메이션 역사의 양대산맥이 된 지브리 스튜디오는 두 천재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지브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알프스 소녀 하이디> <빨강 머리 앤> <미래소년 코난> 등에서 호흡을 맞추며 지브리를 완성시켰다. 저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로 초기부터 모든 작품의 기획·제작·마케팅을 총괄하며 두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부터 <추억의 마니>(2014)까지 작품별로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기술한 이책은 어느 지브리 연구서보다도 흥미진진하다.
미야자키와 다카하다는 천재적인 창작자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상극이라고 할 만큼 다른 성격과 세계관의 소유자다. 병적이라고 할 만큼 성실한 미야자키가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열망과 투쟁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면 미야자키가 “엄청난 게으름뱅이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다카하다는 작품 역시 냉소적이거나 허무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에피소드마다 둘이 극단적으로 부딪치거나 동문서답식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읽는 내내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다.
책을 덮고 나면 미야자키의 천재성은 스스로 만든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통제 불가능의 다카하다가 위대한 작품을 완성하도록 이끌어낸 그 끈기와 집요함에도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둘은 원수처럼 다투면서도 서로의 재능을 흠모했고 상대방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다. 다카하다가 2018년 세상을 떠나며 이 유례없는 ‘환장의 천재 커플’ 시대가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지브리 팬들로서는 다시 한번 안타까워질 뿐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