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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은 진짜 여학생”이란 표적…10대 성착취 피해자 기록

등록 2021-03-19 05:00수정 2021-03-19 14:54

“돈 얻었으니까” 자신을 피해자라 여기지 않았던 혼란
피해자인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10대의 ‘나’에게

그러나 약하고 실수하는 존재라 해서 그걸 착취하는
성매수자의 악취를 자기 것처럼 떠안을 필요는 없어

악취: 열여덟 살의 성착취, 그리고 이어진 삶
강그루 지음/글항아리·1만3500원

누구나 저마다의 현실을 산다. 같은 세상에 살아도, 세상이 나를, 그를, 당신을 취급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부동산 가격이나 연봉 액수에 격차를 느낄 수도 있고, 성폭력 가해와 피해, 방관의 위치에 저마다 선 사람들을 보며 고통받는 사람도 있다. 강그루가 쓴 <악취>의 부제는 ‘열여덟 살의 성착취, 그리고 이어진 삶’으로, 저자가 겪은 미성년자 성착취의 현실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쓰지만 어떤 앱을 쓰는지, 어떤 순간에 사진이 찍히는지에 따라 다른 것들이 보인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칭찬, 공감, 배려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18살에 알게 되는 이야기다.

강그루의 경우 시작은 아르바이트 구직활동이었다. 자격증을 따는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렸다. 가능해보이는 일을 찾아보기도 했다. 연락한 곳에서는 부모님 허락 없이 일하게 할 수 없다고 거절당했고, 연락 온 곳의 문자 내용은 이랬다. “대학생 오빠들이랑 한 시간 데이트하고 3만 원 용돈 받는 거예요. 돈이 더 필요하면 스킨십하고 2만 원, 잠자리하고 7만 원 더 받을 수 있어용.*^^*” 관심없다고 응대하고 문자를 다 지웠지만, 일을 계속 구하기 어려워지자 ‘데이트만 하면 3만 원’이라는 말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제안한 쪽에서 다시 문자를 했다. 친구는 결사적으로 말렸지만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남자는 데이트니까 치마를 입고 오라고 했다. 교복도 좋다고. “누군가에겐 교복이 방패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교복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첫 데이트는 잠시간의 드라이브로 끝났다. 돈이 생겼다. 남자는 드문드문 사소한 일로 연락을 해 왔다. “미성년자를 성착취하는 어른들이 신고를 당할 경우 연인관계였다고 둘러대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문자를 한두 통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남자는 계속 연락했고 계속 만났고 서서히 스킨십을 하게 된다.

애무만 하면 5만 원. 남자가 몸에 올라타고 자위한 일은 초등학교 때 당한 성추행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었지만 “그 일이 내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의 내가 없어졌다고 느끼면서도 돈 있는 삶이 더 좋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친구들과 매점에서 이것저것 사먹는 데 눈치보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고작 한달 사이에 섹스를 요구받는 단계까지 가게 되었다. 남자의 차에서 내린 뒤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했다. “한겨울 검정 바람막이를 입고 있는 나를 혹시라도 누군가가 본다면 쓰레기봉투라고 생각할 것 같다. 다행이다.” 두달쯤 지나자 남자는 비위를 맞추는 척도 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의 사진작품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전이 지난 2018년 11월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대산갤러리에서 개막해,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 전시회를 주최한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 아이들은 ‘내가 여기 있다(Here I am)’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하는 ‘우리가 있다(Here We are)’고 선언하는 당신과 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국과 일본의 사진작품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전이 지난 2018년 11월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대산갤러리에서 개막해,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 전시회를 주최한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 아이들은 ‘내가 여기 있다(Here I am)’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하는 ‘우리가 있다(Here We are)’고 선언하는 당신과 우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다음으로는 랜덤 채팅 앱의 존재를 알게 됐다. ‘조건만남’을 한다는 같은 나이 여자애와 대화를 하기도 했다. 앱에서 오가는 대화를 통해 거래할 수 있는 물건과 행동, 그리고 그에 따른 돈 액수까지 알게 됐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토로하는 일도 가능했다. 이야기를 한참 듣던 한 남자는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 뒤 만나는 남자의 2배인 10만원을 줄 수 있으니 자기를 만나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이 모든 일의 일부만을 말했다. “그래도 맛있는 걸 사다주고 (섹스를 해) 드라이브를 시켜주고 (섹스를 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 (그리고 섹스를 해). 관계할 때만 좀 그렇지 그거 빼고는 (미성년자인 나와 섹스를 하기 위해) 잘해줘.” 이제 와서는 알고 있다. “어째서 나는 그렇게 무지했을까?” 성관계 중에 눈을 감으면 사진을 찍혔다. 그러니 그 두 사람과 조건만남을 그만둔 뒤 불법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가 “나를 찾기 위해서” 사진들을 찾았다. 그곳에는 다양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있었다. 지역, 학교 이름, 학년, 이름까지 적힌 게시물도 있었다. 대학에 수시입학 지원을 한 뒤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번 뒤 생각한다. “고작 그 돈을 얻기 위해 나를 판 나는 얼마나 어렸던 걸까.”

여자 혼자서도, 남자 혼자서도 할 수 없는 성매매에서 사람들이 문제삼는 사람은 여자다. 불법 촬영물은 찍은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미성년자와 성인이 동등한 책임을 지는 게 맞는지 상의할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책의 내용 중에는 미성년자 성착취에 대한 전시 <오늘>에 대한 정보를 접한 뒤,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는 어른들과 단체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대목이 있다. 전시장에 가서,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 뒤에 이런 글이 이어진다. “정말 나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돈 혹은 쾌락을 얻었으니까. 그래서 더 힘들었다. 법적으로는 똑같은 범법자인데 행동은 피해자처럼 하게 되니까 혼란스러워서.” 정말 ‘똑같은’ 범법자일까. 미성년자와 성인이 ‘똑같은’ 인지, 판단, 책임이 가능한가.

강그루는 이 책에 썼다. 성인 남자가 미성년자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교복을 입은 “진짜 고등학생”을 원해서다. “진짜 중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다니는 진짜 여학생들”. 불법 촬영물 시장은 이런 수요와도 연결되어 있다. 피해자인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나’를 잃는 과정이 아니라 찾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1인칭으로 쓰인 이 책은 증언해낸다. 28살의 저자가 18살의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은 때로 책망의 표현으로 수식되지만, 미성년자를 성매수한 남성들에 대해 글로 써내며 자신이 지녔던 미성년자의 취약성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다.

책의 서문을 쓴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책팀장 신박진영의 글처럼, 약하고 실수하고 실패하는 존재라고 해서 그걸 이용하고 착취하는 이들의 악취를 자기 것처럼 떠안을 필요는 없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그리고 열여덟 살, 과거의 나에게”라는 책의 헌사처럼 <악취>가 누군가의 현재를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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