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어드러 쿠퍼 오언스 지음, 이영래 옮김, 윤정원 감수/갈라파고스·1만6500원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조사(2018)를 보면, 흑인 여성이 임신·출산으로 사망할 확률은 백인 여성에 견줘 243% 높다. 흔히 흑인은 지적으로 열등하고, 고통에 둔감하며, 신체적으로는 강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런 인종적 편견 탓에 이들의 고통 호소는 무시되고, 마취나 수술 같은 처치는 때를 놓치는 경우가 잦아서다. 흑인에 대한 편견이 분만대에 누운 흑인 여성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치유와 억압의 집, 여성병원의 탄생>은 우월함과 열등함이 뒤섞인, 흑인 여성의 신체에 대한 마구잡이식 편견이 미국 부인과 의학을 세계적 반열에 올린 동력이 되었으며, 여성의 ‘고통’보다 ‘재생산 능력 관리’에 더 방점을 찍은 오늘날 의료 관행의 씨앗이 됐음을 밝힌다. 의학·노예제·여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의학사학자 디어드러 쿠퍼 오언스는 19세기 전후 백인 남성 의사가 썼던 의학저널, 간행물의 행간을 파고들어 ‘흑인 노예 여성’이 미국 부인과 의학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논증해낸다. 미국 부인과 의학은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에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아프리카 태생 흑인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자국 내 흑인 노예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했고, 그 관리의 핵심에 흑인 여성 노예의 재생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부인과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메리언 심스가 흑인 여성 노예를 공격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다. 당시만 해도 부인과 진료는 공식적인 의학으로 취급받지 못했기에 심스는 백인 여성에게는 결코 시도하지 못했던 여러 실험적 치료를 “고통에 둔감한” 흑인 여성에게 했다. 그 과정에서 자궁이나 목숨을 잃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난소절제술, 제왕절개술 같은 선구적 외과 수술은 대부분 남부 백인 의사와 흑인 노예 환자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났다.” 저자는 말한다. 흑인 여성 노예는 부인과 의학의 ‘어머니’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실제 이들은 업무조와 치료조로 나뉘어 치료받지 않을 때는 간호와 병원 관리 등에 동원됐다고 한다. 19세기 중후반 미국, 흑인, 노예, 여성의 이야기지만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감수자 윤정원의 말대로 “남성 의사-흑인 노예 여성이라는 능동-수동적 관계가 전통적인 의사-환자 관계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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