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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간의 모든 역량과 가능성은 몸에 있다

등록 2021-04-02 05:00수정 2021-04-02 09:51

자연과 인위가 복잡하게 엮인 매듭인 ‘인간의 몸’에 대한 사유
몸을 다스리는 방식은 문화·사회·역사적…“내 몸은 집단의 몸”

몸: 하나이고 여럿인 세계에 관하여

샹탈 자케 지음, 정지은·김종갑 옮김/그린비·2만9800원

지난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었다. 그전 27일에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책의 저자 샹탈 자케가 보기에 “트랜스섹슈얼리즘은 생식 기관에 토대를 둔 인간성의 이분법적 구별의 문제적 특징을 보여주며, 해부학에 따라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구분의 주장을 날려 버린다.”

고정된 단 두 개의 성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배타적으로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두 성의 속성들을 소유할 수 있거나, 두 범주들 가운데 어느 하나 안에 확실하게 놓일 수 있는 그 어떤 성도 갖지 않을 수 있다.” 인간종은 엄격하게 남녀 둘로 나뉘지 않으며 “이원성으로 환원이 불가능한 다양성”을 지닌다. 저자는 성별적 차이는 실재적이며 반드시 검토해야 하지만, 성별적 구분을 보편적 규준으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본다.

생명체인 몸은 자연적이지만 우리가 몸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묘사하며 다스리는 방식은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인 것이다. 인간의 몸은 이렇게 자연과 인위가 복잡하게 엮인 매듭이다. 이 책은 그 매듭을 철학적으로 살핀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홉스, 루소, 칸트 등 근대 철학자들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기술‧예술‧윤리적 역량 측면에서 몸을 성찰하고 성적 욕망과 성차(性差) 문제까지 깊이 다룬다.

우리는 몸이라고 하면 각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종합되어 기능을 발휘하는 어떤 총체적인 것을 떠올린다. 적어도 서양 전통에서는 처음부터 그러했던 게 아니다. 부분들의 단순한 집적이나 물체들의 병렬적 집합체도 몸이었다. 고유한 유기체적 형태로서의 몸이라는 관념은 그것과 서서히 분리되었다. 그러한 분리를 바탕으로 국가를 유기체에 견주는 ‘정치적 몸’의 전통이 생겨났다.

근대에는 토머스 홉스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개인들의 특정한 몸에서 출발하여 리바이어던 국가라는 정치적 몸이 구성된다. 홉스에서 인공적이고 정치적 몸인 “국가는 단지 그 크기와 능력에 의해서만 자연적 인간과 구분될 뿐이다. 국가는 인간의 몸의 연장과 확장일 뿐이다.” 군주는 자신의 몸을 국가에 빌려주면서 국가를 육화(肉化)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국가의 몸, 그것은 나다.”

장 자크 루소도 <사회계약론>에서 국가를 정치적 몸으로 본다. “입법권은 국가의 심장이고, 집행권은 모든 부분으로 하여금 운동을 하게 만드는 국가의 뇌이다. 뇌가 마비되어도 개인은 계속 살아 있다. 하지만 심장이 기능을 멈추자마자 동물은 죽어버린다.” 정부가 없어도 정치적 몸은 살아 있지만 주권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 루소가 보기에 국가는 “거대한 정치적 동물이며 도덕적 몸일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몸과 비슷한 진정한 유기체”다.

저자는 ‘선천적 본성과 후천적 양육’ 측면에서도 몸을 성찰한다. 인간의 몸은 “유전적 소질과 이것의 역사적 발달 사이의 항구적 교차의 산물”이다. 인간의 몸은 학습과 교육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해나간다는 것. “인간은 다양한 사회 속에서 발명된 방식과 모델들을 따라 작품을 수없이 다시 제작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회 집단이나 전통과 관련해서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여러 방법들을 저자는 마르셀 모스의 ‘몸 테크닉’ 개념을 빌려 말한다. 몸 테크닉은 자기를 보존하며 수행력을 증가시키고 외부 환경에 적응하도록 몸을 쓰는 방법이자 습관이다. 자연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태도도 전통적 행동 방식에 의해 학습되거나 전승된 것이다. 다양한 몸 테크닉은 획득된 소질, 현실이 된 잠재력이며 몸은 습관의 다발이다.

이 습관 덕분에 몸은 효율성을 얻지만, 대신에 활성화되지 못한 다른 능력들을 잃는다. 예컨대 노련한 목공의 못 박힌 손은 마사지사나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든다. 역도 선수의 근육질 허벅지는 무용수의 다리 벌리기와 뛰어오르기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가능한 여러 몸들과 함께 탄생하는 반면에, 실재적인 단 하나의 몸과 함께 죽는다.” 습관이란 결국 사회적 전승, 전통이기에 “나의 몸은 차라리 우리들의 것, 집단의 몸”이기도 하다.

예술과 몸의 관계는? “건축은 몸의 거주를 지정함으로써 몸에게 자리를 부여하고 몸에게 존재의 장소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적인 삶의 장소를 제공하는 예술이다.” 저자는 건축이 몸과 가장 관계가 깊은 예술이라고 본다. “외부 세계의 모든 동요 바깥에서 사유가 머물 수 있고 자유롭게 전개될 수 있는 자기의 장소를 배치하는 것”은 인간적 실존에서 매우 중요하다. ‘부동산’으로서의 건물과 장소가 보여주는 어떤 비인간성과 대비된다.

윤리와 몸의 관련성은? 몸은 도덕의 장애물로 여겨지곤 하지만, “몸은 선한 행위의 토대로 항상 머물러 있으며 진정한 윤리적 규칙들을 제공할 수 있다.” 저자는 “모든 선의 원리와 뿌리, 그것은 위장의 쾌락”이라고 본 에피쿠로스를 예로 든다. 위장의 쾌락이 윤리학의 토대인 이유는, 몸의 생명이 충족되지 못하면 선(善)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덕의 첫 번째이자 유일무이한 토대”라고 말한 스피노자도 같은 맥락이다.

독자에게 집중력을 많이 요구하는 책이다. 철학과 철학사의 예습도 요구한다. 다행히 저자는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의 표현을 즐기는 것이 소소한, 어쩌면 큰 즐거움이다. 무용이란? “영혼의 번뇌들을 움직임의 소용돌이 속에 빠뜨려 버리는 몸의 치유적 역량. 몸은 감각 세계를 운동자(무용수)의 자유의 우주, 공기처럼 가벼운 우주로 바꿔 놓고, 찌꺼기들을 치워 버림으로써 거친 현실을 정화시키는 그런 조물주가 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홉스의 &lt;리바이어던&gt;(1651년) 표지에서 군주의 몸은 개별 인민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된다. 위키미디어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년) 표지에서 군주의 몸은 개별 인민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된다.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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