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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장자 접목시킨 동아시아 특색의 ‘빅히스토리’

등록 2021-04-23 04:59수정 2021-04-23 09:52

근대 이후 신문명 열어젖힐 동아시아형 내장근대 탐구
오늘날은 시스템적 차원에서 ‘자성’이 전개되는 첫 시기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김상준 지음/아카넷·4만5000원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는 천 쪽에 육박하는 대작이다. 담긴 내용은 더욱 심오하다. 사회학자의 거개는 서학에 치우쳐 있다. 드물게 김상준은 동아시아에도 해밝다. 미덕은 동·서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서를 합한 북반구에 남반구까지 아울러 세계 전체를 거시적으로 조망한다.

인문사회과학만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양자역학과 진화생물학부터 기후과학과 지구시스템이론까지 후기근대의 신과학도 망라하고 있다.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으로 상징되는 태양의 광자부터 원자적 네트워크로 가동되는 유기체의 원리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치밀하게 조명한다.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에 부럽지 않은 통섭의 전범을 일구었다.

10년 전 김상준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를 읽고 탄복해마지 않았다. 그 책에서 주창하는 중층근대성 이론으로 유라시아 천년사를 꿰뚫어보는 안목을 얻을 수 있었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는 더욱 나아간다. 동아시아형 내장근대가 서방형 팽창근대의 물결을 타고 넘어 내장적 세계화를 견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 이후 신문명을 열어젖히고 있음을 정밀하게 분석해내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작금의 거대한 반전은 단지 지난 500년 동양과 서양의 대분기가 대수렴으로 귀환하고 있음에 그치지 않는다. 홀로세의 농업혁명과 고대국가의 탄생 이래 줄곧 팽창으로 내달린 5000년 인류사의 변곡점에 이른 것이다. 인구성장률과 잠재성장률 모두에서 인류는 낯설기 짝이 없는 축소를 경험하게 된다. 2021년, 인류가 어떠한 지평에 서 있는가에 대한 방향 감각을 새로이 제시하는 것이다. 즉 다가올 문명전환은 과거의 모든 문명전환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류의 여러 문명 사이의, 그리고 체제 사이의 정복의 위협이 가장 낮아진 상태에서 벌어지는 대단히 이례적인 차원의 문명전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유의 문명전환’이라 할 수 있고, ‘문명 이후의 문명’(post-civilization)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 책은 그간의 문명전환 담론이 흔히 노정하는 농본적 회귀주의로 퇴각하지도 않고, 디지털 문명의 신세계로 함몰되지도 않는다. 녹색담론과 기술만능론을 동시에 초극해낸다. 인류의 존망이 위태로운 ‘지구선택’의 압박에 직면하여, 인류가 인류가 되었던 그 태초의 순간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20만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자연선택’의 가혹한 힘에 당면했던 초기 인류는 우애와 협동의 원리를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알파수컷’ 중심의 위계질서가 작동했던 여타 영장류와는 달리, 오로지 사피엔스만이 언어와 상징과 상상과 협력을 통해 수평적 질서를 창출하여 당시의 기후변동을 극복하고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로 이주하여 대번영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저자는 인류가 영장류의 하나에서 지구를 지배하는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종으로 도약하던 바로 그 창발적 순간을 되돌아보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팽창성이 우세했던 지난 5000년, 특히 팽창문명이 절정을 구가했던 지난 200년은 인류의 진화사에서 참으로 예외적인 시간이었음을 또렷이 자각하게 된다. 동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사피엔스로 진화한 20만년 전 이래로 19만년은 큰 팽창 없이 지내왔다. 1만년 전 기후가 온난해지는 간빙기가 시작되어 생물 생장에 우호적 환경이 마련되고 5000년 전부터 농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구 증가와 도시 건설, 국가 형성 등 성장문명을 구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년 전 산업혁명으로 폭발적 팽창을 경험하게 된다. 즉, 20만년의 사피엔스 역사에서 지난 5000년이 얼마나 예외적인 시기였는가를 밝히는 영역이 ‘빅히스토리’의 성과인데, 기왕의 인문학적 역사학은 그 일시적 경험을 일반적인 양 접근한 것이었음을 영장류 연구와 후기근대 신과학의 도움으로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팽창문명이 시작되는 초입기, 예수와 싯다르타, 공자 등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인간의 존재와 영혼을 돌아보고 돌보게 하는 ‘축의 시대’를 개창했던 바이다. 예수의 사랑, 싯다르타의 자비, 공자의 인(仁)이 모두, 인류가 인류가 되었던 그 최초의 순간의 우애와 협동의 원리를, 성장문명이 본격화하며 계급과 신분이 분화되어가던 바로 그 무렵에 환기시켰던 것이다.

지금은 시스템적 차원에서 인류문명을 돌아보고 돌보아야 하는 ‘제2의 기축 시대’이다. 자성(自省)의 성격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시스템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유사 이래 첫 번째 시간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시스템적 차원의 돌봄과 돌아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지구선택에 직면한 인류의 집합적 각성과 새로운 문명의 용틀임을 도처에서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로 상징되는 지구세대가 출현하고 있으며 이에스지(ESG) 열풍 같은 시장의 각성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고로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500년 팽창문명의 예외성을 20만년 인류의 진화사 지평에서 상대화시키는 득의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지난 200년을 지배했던 진보적 역사철학 자체를 극복해낸다. ‘형류세형’(形流勢形)이라고 하는 동아시아 고유의 역사철학에 대양과 대기의 거대한 흐름을 아우르는 장자의 지구적 역사감각을 접목시켜 동아시아 특색의 빅히스토리를 써낸 것이다. 또한 인류가 인류가 되었던 그 최초의 창발성을 시스템 대전환의 원동력으로 삼음으로써 인류세 담론의 새 지평을 여는 ‘딥히스토리’(Deep History)의 서막을 열어젖혔다. 그간 한국 독서시장을 평정해온 재러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에 못지않으며 오히려 이를 넘어선다는 평가도 아깝지 않은 이유다.

촛불혁명 이후 가야 할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제는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지구공동체 전체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미래의 정치인들에게도 숙독을 권한다. 특히 21세기에 태어나 ‘제2의 기축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모든 청년들에게는 필독을 청한다. 천 페이지, 지레 겁먹을 것도 없다. 지구를 상징하는 동서남북 네 명의 선생들이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평이하게 서술되었다. 완독하노라면 붕새의 날개를 달고 훨훨훨 다음 문명으로 비상할 수 있는 비상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감히 21세기에 한국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저작이 탄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병한 문명사학자, EARTH+ 대표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동혜원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동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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