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3800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3800원
잠깐독서
“오늘날 여전히 문학책이 출판되고 팔리는 것은 전적으로 여자들 덕분이다.”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말이다. 우리네의 경험과도 들어맞는 통찰이라 하겠다. 그러나 ‘책 읽는 여자’라는 관념이 자연스러워 보이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독문학자 슈테판 볼만이 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조이한·김정근 옮김)는 13세기 이후 현재까지 서양의 그림과 사진을 통해 여성에게 책을 읽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들여다본 책이다.
기독교 문명권에서 책의 출발이 그러했듯이, 여성과 책의 관계 또한 성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333년에 그려진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에서 천사의 말을 듣는 성모 마리아는 한 손에 성무일도서를 들고 있다. 15세기 화가 휘고 반 데르 후스의 제단화에는 성녀 마르가리타가 십자가와 함께 책을 펴 들고 있는 모습이 포함되었다.
종교적 엄숙주의가 지배하던 중세를 벗어나자 쾌락과 인식으로서의 책 읽기가 시작된다. (아마도 에로틱한)책에 몰입한 나머지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옷을 벗은 여자들의 그림은 ‘경건한’ 남자들을 격분시켰다. 17세기 후반에 그려진 <책 읽는 여인>(피터 얀센스 엘링가)은 가사 노동을 제쳐둔 채 책 읽기에 몰입해 있는 하녀의 뒷모습을 포착했다. 여자만이 아니라 ‘하녀’까지도 책을 읽기에 이른 것이다! 성적·계급적 약자들이 무지하고 순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책 읽는 여자와 하녀의 존재란 가히 위협적이지 않았을까. 책의 말미에는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모습을 담은 이브 아널드의 사진도 실려 있다. 두 옮긴이는 원저를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 읽기와 여자’의 역사를 개괄한 글을 직접 써서 곁들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