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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천자문이 999자인 거 아세요?”

등록 2006-02-02 19:07수정 2006-02-06 15:45

한정주의 <천자문뎐>
한정주의 <천자문뎐>
인터뷰/<천자문뎐> 낸 한정주씨

“천자문, 한 글자도 외우지 마십시오.”

<천자문뎐>(포럼 펴냄)을 지은 한정주(41)씨의 발칙한 주장이다. 125개 문장에 심어진 동양의 신화와 역사 그리고 문명의 이미지를 새기면 천개의 한자는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것.

<천자문>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양 무제 때 사람인 주흥사(470?~521)가 왕희지의 행서 가운데 천 개의 한자를 중복되지 않게 가려내 하룻밤에 지었다는 책. 4자+4자를 한 문장으로 모두 125개 문장으로 돼 있다.

“천자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한자 학습서가 아닙니다. 한자를 가르치려면 교육부에서 정한 상용한자처럼 쉬운 것부터 해야 할 터인데, 천자문에는 한문을 많이 아는 사람들도 잘 모르고, 학동들이 몰라도 될 어려운 한자들이 무척 많아요.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문서라고 할까요. 잘 뜯어보면 1천자 안에 중국의 고전, 고사 등이 응축돼 있어요.”

<천자문뎐> 문장풀이의 얼개는 셋. 마흔여덟번째 얘기를 예를 들면, ‘節義廉退는 顚沛匪虧라’는 원문과 ‘절개와 의리와 청렴과 물러남은 엎어지고 넘어지더라도 흐트러뜨려서는 안된다’의 뜻풀이에 이어 진(晋)나라때 옛 주군과의 의리를 지켜 원수를 갚으려던 예양, 자신의 주군과 친구 예양과의 의리 사이에서 고민하다 자살을 택한 청평의 고사를 곁들여 설명하는 식이다.

이야기로 풀어낸 것은 끊어진 한문학습의 맥을 잇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그것도 재미있게.


“주변에서 천자문을 제대로 뗐다는 얘기를 못 들었어요. 옛 서당에서 4~5세면 자석 위주로 외우게 하지만 8~9세에 이르면 그 속에 담긴 내용을 가르쳐 문리를 깨우쳤는데 말이죠.” 초등생 조카를 염두에 두고 썼는데 정작 그 녀석은 책에 관심이 없더라고 했다.

영조 때 발간된 <주해 천자문>이 인용된 고전과 고사 출전과 원문을 밝혀 이번 작업이 수월했다. “주해가 없는 것은 이에 걸맞는 것을 찾아내 덧붙였다”며 의고적인 한문학계 풍토에서 이조차 일종의 모험이라고 말했다.

고전은 끊임없이 새롭게 가공해 독자들한테 읽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현대문체로 옮기기, 동서-고금 교차비교 하기 등이 그 방법일 터인데, 자신은 후자에 무게를 둔다. 그는 논어를 예로 들어 국역본이 서른여섯 가지가 되지만 틀과 풀이가 훈고적이어서 요즘 사람들한테 맞지 않다고 말했다. 논어와 맹자를 비교하고, 사기와 플루타르크영웅전을 비교하여 전달하는 게 이해를 돕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물이 ‘인물비교로 보는 사기와 플루타르크 영웅전’인 <영웅격정사>.

“고전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풀어낼 내용이 엄청 많아요.” 시경 300편 가운데서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것을 골라내 엮으면 훌륭한 콘텐츠가 된다는 것. 뜻맞은 지인 4~5인이 만든 고전연구회에서 이런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2천년을 살아남은 명문> <멋대로 읽는 맹자> 등을 준비 중이다. “중국 천자문 말고 한국의 고전과 고사에서 취한 한국 천자문을 만들어 볼 생각은 없느냐”고 하자 “좋은 생각이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라면 뜸을 들였다. 천자문 풀이에 ‘뎐’을 붙인 것은 잘못 아닌가. “‘뎐(傳)’은 통상 인물의 전기에 붙이지만 <좌씨전> <시전>처럼 ‘주석’이란 의미가 있다”는 대답이다. 천자문과 오랫동안 씨름했거니 이를 의인화했다고 해도 망발은 아닐 터다.

“그런데, 천자문이 1000자가 아니라 999자인 것 알아요? 77번째 문장 ‘九州禹跡 百群秦幷’ 117번째 문장 釋紛利俗 竝皆佳妙의 幷과 竝은 같은 글자입니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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