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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유롭기에, 사랑에 잔인한 여자

등록 2006-02-02 19:59수정 2006-02-06 15:47

프랑수아즈 지루 <루 살로메>
프랑수아즈 지루 <루 살로메>
“우리 두 사람은 함께 반 시간만 보내도 언제나 행복했습니다. 내가 지난 12개월 동안 내 위대한 작품을 완성시킨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프리드리히 니체)

“내 순수한 샘물! 당신을 통해서 나는 세상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건 세상이 아니라 오로지 당신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당신, 당신, 당신만을!”(라이너 마리아 릴케)

“당신의 재능은 매번 나보다 뛰어나고 오히려 내 생각을 완성시켜 주었소.”(지그문트 프로이트)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활동한 유럽의 탁월한 지성 세 사람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는 이는 한 여자, 루 살로메다. 이 세 사람뿐 아니라 이들보다 덜 알려진 숱한 남자들을 매혹시켰고 그들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여자 루 살로메(1861~1937). 그 자신 작가이자 학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남자들을 자극하고 격려함으로써 그들의 창조력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에 더 빼어났던 루의 삶은 이미 숱한 책을 낳았다. 프랑스의 여성 언론인이자 여성부 및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프랑수아즈 지루(1916~2003)의 <루 살로메 - 자유로운 여자 이야기>(함유선 옮김, 해냄)는 그런 점에서 ‘또 한 권의 루 살로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루의 생애를 모두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서술한다. 루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루터교 목사였던 하인리히 길로트와의 첫사랑, 철학자 파울 레와 니체와의 애정과 우정을 넘나드는 기묘한 삼각관계, 동양학자인 안드레아스와의 ‘성생활 없는’ 결혼, 열네 살 연하의 청년 시인 릴케와의 만남과 이별, 쉰 살 나이에 정신분석학에 입문해 스승으로 ‘모신’ 프로이트와의 관계, 그리고 그 전후의 숱한 남자들과의 길거나 짧은 연애…. 기왕의 루에 관한 책들에서도 다루어진 얘기들이다.

그렇다면 지루의 이 책이 독자성을 주장하는 부분은 어디일까? 지은이는 젊은 시절의 루가 성적으로 불능에 가까울 정도로 금욕주의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대목에서 지은이는 루와 오빠(들)의 근친상간이라는 한 가지 과감한 가설을 제시한다. 루는 다섯 오빠 아래의 여섯 번째로 태어났으며 당연히 아버지와 오빠들의 ‘지나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지은이는 이 성장 과정과 이후의 남자들에 대한 금욕주의적 냉담이 모종의 관련성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초기의 금욕주의 덕분에 루는 꽤 오랫동안 ‘처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중년 이후의 그는 거꾸로 열정적인 ‘사랑의 향연’에 몸을 맡기기에 이른다. 유일하게 합법적인 배우자였던 안드레아스와 40년 이상을 거의 남남처럼 지냈던 루는 신경정신과 의사 프리드리히 피넬레스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안드레아스의 이혼동의서를 받아내지 못한 뒤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며 그 때문에 유산한다. 지은이는 이 사건과 그에 뒤이은 두 번째 유산이 의도적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역시 증거는 없다.

루의 삶을 저 유명 무명의 남자들 없이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젊은 그는 “남자들은 여자들과 우정을 나눌 수 없나요?”라고 순진하게 혹은 당돌하게 반문한다. 그에게는 자신을 보는 족족 매혹되어 사랑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남자들이 가소로워 보였다. 그러나 중년 이후의 그의 삶은 젊은 남자들을 상대로 한 사랑의 모험으로 채워졌다. 어느 이 경우에든 남자들을 선택하고 때가 되면 가차없이 ‘버리는’ 것은 언제나 루의 몫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잔인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자유롭다는 것은 때로 비정하기까지 하다”는 말로 지은이는 루를 옹호한다. 루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자아를 찾아가는 예술가로서 완전한 선구자였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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