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실고실하고 따뜻한 집 없던 옛날
소설 써서 아이와 먹고살아야 하는
집엔 젊은 엄마의 불안과 불면 스며
덜컥 땅 사 집 지어 이웃과 더불어
집 길들이고 집에 길들며 살아가기
"글 쓴다는 것은 숨죽여 엿보는 일"
소설 써서 아이와 먹고살아야 하는
집엔 젊은 엄마의 불안과 불면 스며
덜컥 땅 사 집 지어 이웃과 더불어
집 길들이고 집에 길들며 살아가기
"글 쓴다는 것은 숨죽여 엿보는 일"

공선옥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5살 어느 날, 장독대 아래 들인 단칸방 세입자였던 나는 일가친척 모여 잔치가 한창인 주인집 툇마루에 신을 신고 올라가 냉큼 똥을 쌌다. 결기에 찬 복수였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주인집 막내아들이 하루가 멀다고 쥐어박고 침 뱉으며 “장독대 밑에 사는 거지, 우리 마당에서 나가!”를 시전하는 것도 아니꼽고 서러운데, 잔칫날이 되자 주인집 아주머니가 마당에 나와 어수선하게 굴지 말고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있으라며 난데없이 금족령을 내렸던 것이다. 좁고 컴컴한 방에서 널찍하고 환한 마당을 향해 목을 길게 늘이던 내가 정확히 어떤 사고의 과정을 거쳐 자해공갈형 복수를 결행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새벽부터 잔치음식을 만들다 혼비백산 달려 나와 연신 고개 숙여 사과하던 젊은 엄마의 새카만 정수리,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저 영악한 게 맨궁둥이를 안 보이려고 치마까지 차려 입고 나왔더라”고 말하며 웃던 얼굴이다. 공장지대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건넌방, 뒷방, 창고에 장독대에까지 방을 들여 한집에 너덧 가구는 기본이던 1970년대 말 수도권 소도시, 장독대 밑 좁고 컴컴한 방이 내가 기억하는 첫 집이다. 공선옥 작가의 첫 집은 1960년대 초, 전남 곡성 산골마을의 세 칸 초가집이다. 마을이 서향이라 여름에는 “지는 해의 무차별적인 공격” 때문에 덥고, 겨울이면 몰아치는 북서풍 때문에 매섭게 추운 집. 작은 봉창으로 볕이 들락말락해 “대체로 낮에도 어둑시근”한 그 집에는 구렁이가 출몰해 시렁 위 바구니에 든 달걀을 천천히 하나씩 삼키곤 스르르 사라졌다는 괴담이 전해진다. 집 뒤편 대나무 숲에서 내려온 고라니가 쪼그려 앉아 고구마를 파먹고 산양이 내려와 물을 마시던 이 목가적인 집은 그러나 ‘새마을 시대’를 지나며 ‘조국 근대화’란 미명 아래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집은 공간인 동시에 시간이다. 지어지고 낡아지고 부서지며 그 집이 속한 시대를 반영하고 그 집 사람들이 살아낸 시간을 품는다. 그래서 공선옥 작가가 나고 자라고 견디고 벗어나고 머문 집들에 관한 이야기인 <춥고 더운 우리 집>을 읽노라면, 어쩐지 당신이 살아온 집들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의 구수한 입담과 생기 넘치는 에피소드 사이사이, 잠깐 즐거웠고 대부분 지긋지긋한 나의 옛집에 얽힌 추억들이 칙칙하게 피어난다.

한겨레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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