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불평등·양극화 해법 찾아 국민행복 시대로 가야죠”

등록 2021-05-23 18:07수정 2021-05-24 02:35

[짬] 국민총행복전환포럼 박진도 이사장

국민총행복전환포럼 박진도 이사장이 <한겨레>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국민총행복전환포럼 박진도 이사장이 <한겨레>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사단법인 국민총행복전환포럼(이하 포럼) 박진도 이사장이 3년 전에 포럼을 만들 때 참여한 발기인이 220여 명이었다. “애초 20~30명을 예상했는데 훨씬 많이 모였죠. 그때 한국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문제의식에 많은 분이 공감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지난 3년 동안 성장주의 시대와 결별하고 나라 발전의 목표를 사람 행복으로 대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담론 확산에 힘을 쏟았다. 월례 포럼에 분기마다 각기 다른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 3월20일 세계행복의 날에는 행복페스티벌 행사도 마련했다. 행복지표를 만들어 지자체 8곳의 행복도 조사도 발표했다.

포럼 설립 6개월 뒤인 2018년 10월에는 주민 행복을 지방정부 운영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지방정부 협의체인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가 구성돼 포럼이 이 단체 사무국도 맡았다. 작년에는 국회의원 38명이 속한 연구모임 ‘국회 국민총행복정책포럼’이 출범하는 데 산파 노릇도 했다. 창립 3년 만에 국민총행복 정책을 연구하고 시행하는 ‘시민사회와 지방정부, 국회 3각 편대’가 틀을 갖춘 것이다.

그는 최근 의료·교육·환경 등 여러 분야 전문가 14명과 함께 <GDP 너머 국민총행복-아직 행복하지 않은 국민을 위한 12가지 제언>(한겨레출판)을 펴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역 근처 사무실에서 박 이사장을 만났다.

표지.
표지.

그는 책에서 코로나19 이후 한국사회 위기를 타개할 새 패러다임이자 실질적 해법으로 국민총행복(GNH)을 제안했고, 다른 저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행복 지수를 높일 방안에 초점을 맞췄다.

“국민총행복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대 확산을 위해 책을 냈죠.” 유엔이 2013년부터 내는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첫 회 41위에서 올해는 62위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더 나은 삶의 지수’는 2011년 24위에서 2018년 30위로 밀렸다. 두 행복지표에서 한국이 처지는 가장 큰 이유는 관계를 보여주는 사회적 지원이나 공동체와, 삶을 선택할 자유(자율성) 영역 점수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민총행복을 국정운영의 철학으로 삼는 대표적인 나라인 부탄이 만든 행복지표의 네 기둥은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적 발전’ ‘문화의 보전과 증진’ ‘생태계의 보전’ ‘좋은 거버넌스’이다.

우리가 흔히 한 국가의 성공을 측정하는 척도로 쓰는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행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 합계가 지디피입니다. 삶에 가치가 없어도 시장에서 거래되면 지디피는 올라요. 총기사고가 늘고 환경이 나빠지면 지디피가 늘죠. 이 문제로 시장에서 거래가 발생하니까요. 하지만 제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인 손자와 노는 것 그리고 제가 종종 하는 무료강의 같은 것은 지디피에 안 들어가요. 몸이 건강해 병원에 가지 않아도 그렇죠. 사실 지디피가 우리 삶을 규정하는 것은 10분의 1도 되지 않아요. 지디피로 삶의 질을 말하는 것은 거짓이죠.”

그가 보기에 세계 행복도 순위에서 한국이 뒤처지는 이유는 경제성장 지상주의가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어서다. “삶의 질을 말하려면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을 봐야 합니다. 소득과 건강, 지식, 문화, 환경, 공동체, 워라밸(일과 균형), 심리적 웰빙 이런 것들이 모두 커져야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지디피 성장주의에 갇혀 있어요. 지디피 말고 삶을 기준으로 삼아야죠.”

포럼은 현재 상근자 3명 등 6명의 활동가가 행복영향평가나 행복기본계획 제도 등의 정책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내부에 국민총행복정책연구소도 뒀다.

‘국민총행복 담론 투쟁’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뭐냐고 묻자 그는 “행복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거나 경제성장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이라고 했다. “행복이 밥 먹여 주냐고 하면 저는 그렇다고 답해요. 행복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갖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박정희 정부 이후 성장주의에 빠졌어요. 특히 고도성장사회를 산 사회지도자들이 경제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저성장 시대라 성장의 떡고물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죠.”

그는 한국사회 ‘성장중독’의 문제점을 일자리 대책을 들어 설명했다.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으로 불평등과 환경 악화 등의 문제가 생겼는데 성장론자들은 그 해법으로 다시 성장을 말합니다. 성장으로 좋은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큰 상황에서는 불가능해요. 좋고 나쁘고는 상대적이잖아요. 좋은 일자리를 위해선 기업이나 학력, 지역, 성별 격차를 줄이는 게 더 중요해요.”

지난 3년 ‘국민총행복’ 담론 확산

‘지자체 협의체’에 ‘국회 연구모임’도

행복지표 만들어 지자체 조사 발표

최근 ‘GDP 너머 국민총행복’ 펴내

“의료·교육·돌봄 등 복지 강화 우선

의식주 제대로 갖추는 게 행복”

그는 “부유층과 기업 등 기득권의 이데올로기인 성장주의”와 맞서기 위해선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포럼이 어떤 정책을 낼지 논의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을 현재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불평등과 양극화입니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의료와 교육, 돌봄, 주거 등의 분야에서 정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도 내려고요. 우리는 복지 수준이 낮아 먼저 의료나 교육, 돌봄 분야에서 현물성 복지를 강화하고 그 뒤에 저소득층 중심으로 기본소득제를 시행하는 게 바람직해요.”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증세도 필요하다고 했다. “부유세에 행복세라는 이름을 붙여 도입하면 좋겠어요. 내가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도 행복해야죠. 행복은 공유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유세는 행복세이죠. 우선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그걸로도 부족하면 보편 증세를 해야죠.”

농업경제학자인 그는 어떻게 ‘행복’과 만났을까? 2010년에 임기 3년의 충남연구원장에 취임한 그는 이듬해 연구원에 행복연구팀을 꾸렸다. “2천년대 들어 충남의 연 지디피 성장률이 평균 9%였어요. 이 수치가 얼마나 높은 건지 사람들한테 이야기해도 별로 반응이 없어요. 내 삶은 나빠졌는데 뭐가 중요하냐는 거죠. 그때부터 지디피가 아니라 사람들의 총체적인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당시 충남도 슬로건이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이었어요. 그 의미를 도 핵심공무원들한테 물어도 구체적으로 답을 못해요. 공장 세우고 일자리 늘린다는 그런 이야기뿐이었죠. 성장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팀을 만들어 연구했죠.”

그리고 그에게 부탄이라는 나라가 찾아왔다. 그는 2011년 첫 방문 이후 부탄을 다섯 차례나 찾았다. 4년 전에는 두 달 동안 살아보기도 했다. “행복도 순위를 보면 북유럽 국가가 가장 높아요. 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소득이 훨씬 높아요. 북유럽 국가로 행복을 말하면 우리도 소득을 두세배 늘려야 무상 의료나 무상 교육이 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았죠. 그때 부탄이라는 나라가 눈에 들어왔어요. 소득은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지만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하는 나라이죠. 교육이나 의료 수준은 우리보다 낮지만, 자기들 수준에 맞춰 합니다. 환경과 문화를 중시하고 공동체가 살아 있어요. 지디피보다 국민총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이런 이야기도 들려줬다. “부탄은 여행자도 무상 의료 혜택을 받아요. 제가 그 나라 병원을 찾은 일이 있는데 골치가 아팠어요. 환자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병문안을 오더군요. 공동체가 살아 있어요. 그들이 하는 기도도 자신이나 아이들 잘 되라는 게 아니라 세계 평화나 자연 환경, 주위 사람들을 위해 하더군요.”

박진도 이사장. 강성만 선임기자
박진도 이사장. 강성만 선임기자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박 이사장은 대학원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농업이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했어요. 유명한 경제학자들도 대부분 농업경제학자였고요. 전태일도 농민의 아들이잖아요.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도 있었죠. 사회가 공업국가로 바뀌면서 농민들이 이농하듯 농업경제학자들도 전공을 바꿨지만 저는 이농을 하지 않은 거죠.”

2004년에는 농어촌 주민의 주체적 역량을 키우겠다는 뜻으로 지역 재단(이사장 박경)을 만들어 교육과 네트워크 활동을 해왔다. “농업 개혁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중앙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농촌 주민들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봐서죠. 그러니 돈을 풀어도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제가 농업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지역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나 조직’이 필요하다고 본 이유죠. 그동안 수천 명이 지역 재단에서 리더 교육을 받았고 수백 명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요. 매년 하는 지역리더 대회에도 300여 명이 참석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