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존재감 없는 유령과 투명인간 같은 10대가 자존감을 찾아가는 뮤지컬.’
팀 버턴 감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비틀쥬스>가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렸다.
<비틀쥬스>는 영화 스토리를 큰 틀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유령이 된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낯선 가족이 이사 오자, 부부는 그들을 쫓아내려고 98억년 묵은 유령 비틀쥬스(유준상·정성화)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비틀쥬스는 이사 온 가족의 딸인 10대 리디아(홍나현·장민제)와 결혼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유령을 볼 수 있는 리디아는 재치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한다.
뮤지컬을 재미있게 볼 관전 포인트 셋은 비틀쥬스·리디아·집이다.
먼저, 애정결핍 아들임이 드러나는 비틀쥬스. 남을 괴롭히고 심한 장난을 치는 ‘악동’으로 나오는데,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막판에 ‘반전’으로 보여준다.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맨날 구박만 받아 스스로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던 그는 악동 짓으로나마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외로움을 타는 이 유령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영화에선 비틀쥬스가 14분30초밖에 나오지 않는다. 뮤지컬에서 비틀쥬스는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기도 하고, 뮤지컬이 어떻게 흐를지를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관객과 무대의 벽을 허무는 뮤지컬 사회자(MC)로 관객을 판타지 세계에 초대한다.
두번째는,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검은 옷의 리디아. 뮤지컬은 리디아의 성장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내 삶이 암실이야”라며 반항하는 리디아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여긴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 저승을 찾아가는 모험도 무릅쓴다. 그 과정에서 아빠와의 오해를 풀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뮤지컬 <비틀쥬스>의 주인공 리디아. 씨제이이엔엠 제공
리디아와 비틀쥬스는 집 옥상에서 처음 만나 ‘내 이름을 불러봐’(Say my name)라는 노래로 합을 맞춘다. 둘이서 재치 있는 말장난으로 비틀쥬스 이름을 부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벌이는 장면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는 무대가 되는 집. 무대는 집 거실에서 다락방으로, 다락방에서 저세상으로 마법과 같이 살아 움직인다. 마치 집을 또 하나의 캐릭터처럼 표현했다.
부부가 살던 파스텔 색조의 빅토리아풍 집은 리디아 가족이 들어오면서 차가운 느낌의 모던 하우스로 바뀐다. 비틀쥬스가 장악하면 유령의 집과 게임쇼 스테이지로 변화무쌍하게 전환된다. 집에서 ‘갑툭튀’(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 하는 여러 인형과 마술 같은 트릭은 양념처럼 재미를 더한다.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 장면. 씨제이이엔엠 제공
무대 조명은 이런 변화를 좀 더 강렬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빛과 명암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선과 악, 공포와 코미디, 어둠과 빛을 함께 펼쳐낸다. 음악도 다채롭다. 가스펠, 스카, 스윙재즈, 인도 전통음악, 데스메탈, 팝, 칼립소 등이 역동적인 변주를 이룬다. 팀 버턴 영화 팬이라면 머리가 쪼그라진 유령, 뱀처럼 생긴 모래벌레 등 원작과 똑같이 만든 인형을 찾아볼 수 있다.
뮤지컬은 2019년 4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번 공연은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다. 애초 지난달 18일 막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무대 기술 구현 등의 문제로 두차례나 연기한 끝에 6일 개막했다. 하지만 첫날 공연도 티켓 시스템 오류로 15분 늦게 시작했다. 공연을 마치는 8월7일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