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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감독님한테 꽃 받고도 몰랐죠, ‘파리의 별’ 되리란 걸

등록 2021-07-19 20:23수정 2021-07-20 02:41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박세은】
352년만에 아시아 출신 처음
6월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뒤
무대에서 수석무용수 발표돼
“내게 에투알은 간절함과 인내
10년 노력에 박수 보내준 것
내년 여름엔 국내 공연 할수도”
파리오페라발레 박세은이 6월10일 파리 바스티유 극장 무대에 오른 <로미오와 줄리엣> 개막 공연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파리오페라발레 박세은이 6월10일 파리 바스티유 극장 무대에 오른 <로미오와 줄리엣> 개막 공연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저에게 에투알은 간절함과 인내심이었죠. 이젠 ‘갈 곳까지 다 갔다’고 하지만 보여드려야 할 춤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부터가 시작’이죠.”

발레리나 박세은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서 그는 세계적인 발레단인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에투알(étoile·수석무용수) 자리에 동양인 최초로 올랐다.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별’을 뜻한다.

간절함과 인내심이란 무엇일까? “프랑스로 가기 전까지 러시아 스타일의 춤을 배웠다. 하지만 프랑스에 가서는 프랑스 스타일 춤을 춰야 했다. 처음엔 제 춤이 감정 표현은 없고 기술적 표현만 뛰어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게 맞나?’ ‘나는 지금 어디 있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답을 찾아갔다. 스스로 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바닥부터 노력해 10년 동안 조금씩 바뀌고 성장한 제 춤을 좋아해주기 시작했다. 간절함과 인내심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파리오페라발레는 6월10일(현지시각) 프르미에르 당쇠즈(제1무용수) 박세은을 에투알로 지명했다. 파리오페라발레 정단원 150여명은 카드리유(군무)-코리페(군무 리더)-쉬제(솔리스트)-프르미에르 당쇠즈(제1무용수)-에투알(수석무용수) 차례로 나뉜다.

박세은이 6월10일 &lt;로미오와 줄리엣&gt; 공연을 마친 뒤 에투알로 지명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박세은이 6월10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마친 뒤 에투알로 지명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파리오레라발레 박세은이 6월10일 에투알로 지명된 뒤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파리오레라발레 박세은이 6월10일 에투알로 지명된 뒤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승급이 발표된 순간은, 파리 바스티유 극장에서 개막한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 공연이 끝난 뒤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문을 닫았던 극장이 다시 연 계기가 된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앞서 박세은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다른 4명의 에투알과 함께 줄리엣 역에 캐스팅됐다. 개막 무대 주역으로 박세은이 낙점되면서 에투알로 승급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컸다. 객석에서 터져 나온 “브라보!”는 예고장이었다.

박세은은 기자회견에서 에투알로 승급되던 그날을 기억했다. “그동안 준비해왔던 줄리엣 이야기를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연에 임했다. 저 빼고 모든 사람이 제가 에투알로 승급되는 걸 알았다고 했는데, 저는 몰랐다. 에투알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기에 멘탈이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감독님이 제게 꽃을 보내주었다. 이전에는 꽃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싶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에투알에게만 보내주는 꽃이었다.”

352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아시아 출신 무용수가 에투알이 된 것은 박세은이 처음이다. 2011년 준단원으로 파리오페라발레에 입단한 박세은은 10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파리오페라발레 박세은이 6월10일 파리 바스티유 극장 무대에 오른 &lt;로미오와 줄리엣&gt; 개막 공연에서 줄리엣을 맡아 공연하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파리오페라발레 박세은이 6월10일 파리 바스티유 극장 무대에 오른 <로미오와 줄리엣> 개막 공연에서 줄리엣을 맡아 공연하고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박세은 제공

파리오페라발레는 매년 시즌 시작 전인 9월에 발레단 아카데미 학생부터 에투알까지 200여명이 순서대로 무대로 걸어 나오는 행진 행사(défilé·데필레)를 연다. 에투알은 가장 큰 왕관을 쓰고 행진한다. 박세은은 프랑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서 왕관을 쓰고 퍼레이드를 할 예정이다.

그에게 어려움과 예술가로서 고통은 없었을까. “코로나와 프랑스 연금파업으로 춤출 기회가 자꾸 사라지는 게 힘들었다”는 그는 자신의 춤에 만족감이 떨어질 때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박세은은 “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걸 코로나19로 인해 사람 간의 접촉이 금지된 지금 더 절실하게 느꼈다. 코로나19 확산 걱정 때문에 관객 없이 카메라만 놓고 춤을 췄다. 관객은 영상으로 보지만 우리의 호흡까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벽 보고 하는 느낌이었다. ‘예술은 관객 없으면 의미가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춤은 객석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발레리나 박세은이 2019년 7월30일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발레리나 박세은이 2019년 7월30일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조언했다. “예술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런데 가끔 나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경쟁자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다. 남과 비교하면 본인이 힘들다. 그런 부분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질문하고 문제를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박세은 15일에 귀국했다고 했다. “백신을 맞아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할 필요는 없지만, 코로나19 감염 테스트 결과가 음성으로 나올 때까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뭉클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떨까? “이력서로는 최고를 찍어 갈 곳까지 다 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여드려야 할 춤이 많다”며 “그래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작품도 얘기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돈키호테>도 해보고 싶고, <마농> 무대에도 언젠가 꼭 서보고 싶고, <라 바야데르>도 욕심이 난다.”

국내 팬을 위한 내한 공연도 계획 중이다. “국내에서 공연하자는 제안을 몇번 받았다. 하지만 발레단 공연 시즌 기간에는 프랑스 밖에서 공연하기 사실상 힘들다. 시즌이 아닐 때가 여름인데, 내년 여름에는 국내 공연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발레리나 박세은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발레리나 박세은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발레리나 박세은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발레리나 박세은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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