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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오페라는 어떤 맛? 영화 ‘박하사탕’

등록 2021-08-26 19:49수정 2021-08-27 02:37

영화 원작 오페라 국내 처음
광주시립오페라단 정식 초연
27~28일 서울 해오름극장서
영화 <박하사탕> 스틸컷.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박하사탕> 스틸컷.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박하사탕>이 주인공 영호에 초점을 맞춰 거대한 폭력이 한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다룬다면, 오페라 <박하사탕>은 영호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의 개성을 입체적으로 그렸습니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포에서도 생명의 힘을 잃지 않았던 5월 광주를 담아내려 했습니다.”

이건용 오페라 <박하사탕> 예술감독은 2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리허설 뒤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 공연으로 제작한 오페라 <박하사탕>이 27~28일 같은 장소에서 관객과 만난다. 기차 선로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박하사탕>이 오페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국 오페라에서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인공 ‘영호’ 역을 맡은 성악가 윤병길.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주인공 ‘영호’ 역을 맡은 성악가 윤병길.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박하사탕>은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공수부대원으로 투입된 한 남자의 사랑과 파멸을 다룬 사실주의적 비극 오페라다. 작품을 처음 기획한 건 2019년 3월이다. 이듬해인 광주민주화운동 40돌에 맞춰 작품을 만들 계획이었다. 이건용 감독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강풀의 웹툰 <26년>도 원작 후보로 물망에 올랐지만, 최종 선택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었다”며 “이창동 감독에게 전화했더니 ‘영화가 원작인 오페라가 아니라 새로운 오페라로 만들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2019년 콘서트 오페라로 먼저 선보인 뒤, 2020년 정식으로 무대에 올리려 했으나 코로나19 사태 탓에 또다시 콘서트 오페라로 갈음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 2막 6장의 오페라로 정식 초연하게 됐다.

오페라는 영화처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이다. 하지만 오페라는 영화가 선택한 암울하고 황폐한 분위기 대신 다채로운 음악과 발랄한 조역을 더해 5·18 민주화운동의 생명력을 재현한다. 대표적인 게 영화에는 없는 캐릭터 ‘명숙’이다. 고등학교 간호반원인 명숙은 5월 광주에서 총상을 입은 영호를 치료해주지만, 훗날 시위를 하다가, 형사가 된 영호에게 참혹하게 고문당한다.

오페라 &lt;박하사탕&gt; 온라인 녹화 장면.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 <박하사탕> 온라인 녹화 장면.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명숙의 테마곡은 ‘삶은 아름다워’다. 영화에서 고문당하는 학생의 일기장에 적힌 글에서 따왔다. 영화를 본 이라면 잊지 못하는 “삶은 아름답다”라는 대사가 오페라에도 나온다. 또 광주 시민군을 지원한 주먹밥 어머니 부대 등 생활력 있는 조연들을 넣어 주인공 영호의 무거운 분위기를 상쇄한다.

영화는 영호가 선로에서 생을 마감하며 다른 장면으로 전환하지만, 오페라는 다르게 접근한다. 영호의 기차 신 다음엔 망월동 묘지가 곧바로 등장한다. 이때 영호의 첫사랑 순임이 나타난다. 순임은 영호에게 “기억하나요?” “기억하세요!”라는 대사를 계속 던진다. 극 중 ‘기억’에 관련된 가사는 유난히 자주 등장하고 반복해 나온다. 가해자 역시 그날의 기억을 숨기고 잊으려 하기보다 드러내고 증언하고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에서는 무채색에 가까웠던 영호의 주변 인물들이 오페라에서는 개성적인 인물로 되살아난다. 영화의 순임은 박하사탕처럼 순백색의 착한 이미지다. 오페라의 순임은 영호의 변심에 절망하고 안타까움을 거침없이 내쏟는다. 영호와 남편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분출하기도 하고 때론 절제된 형태로 승화하는 성숙한 모습도 보여준다.

이건용 예술감독.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이건용 예술감독.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오페라는 찰진 전라도 사투리를 정겹게 들려준다.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와 인물들의 복잡하고도 내밀한 심리 묘사도 잘 보여준다. 광주 전남도청 앞 시위 장면에선 대중가요인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오페라 공연에 흘러나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이건용 감독은 오페라로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에 대해 “처음에는 진압봉과 대검이 생명의 힘을 누른 듯 보였지만, 생명은 죽지 않고 강렬하게 저항하며 그 힘과 광채를 뿜어냈다”며 “오페라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환기해주고 생명의 힘을 확인해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을 지낸 이건용이 작곡과 예술감독을,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연출가 조광화가 대본과 연출을, 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윤호근이 지휘를 맡았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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