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서클. 왼쪽부터 색소폰 신현필, 가야금 박경소, 베이스 서영도, 드러머 크리스티안 모란. 플랑크톤뮤직 제공
‘신박’(신선하고 신기한)한 음악을 하는 이들이 ‘괴짜 과학자’로 돌아왔다.
가을을 앞당기는 비가 내리던 지난 31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연습실에서 국악과 재즈를 넘나들며 연주하는 밴드 신박서클을 만났다. 이들은 지난 23일 두번째 정규 앨범 <유사과학>을 냈다.
‘신박’한 밴드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 색소폰 신현필(신), 가야금 박경소(박), 베이스 서영도(서), 영국 출신 드럼 연주자 크리스티안 모란(클)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왔다.
국악과 재즈 연주자에 외국인까지 함께하는 조합은 어떻게 나왔을까? 시작은 2017년 국립극장 기획공연 ‘여우락(樂) 페스티벌’에서였다. 박경소와 신현필이 함께 공연을 펼쳤다. 박경소가 더 긴 호흡으로 작업하기 위해 듀엣을 제안했다. 이에 신현필이 밴드를 만들자고 역제안하면서 일이 커졌다.
신박서클. 왼쪽부터 베이스 서영도, 색소폰 신현필, 드러머 크리스티안 모란, 가야금 박경소. 정혁준 기자
신현필은 서영도와 모란에게 함께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신현필과 자주 공연해온 서영도는 “국악과 재즈의 만남이 좋았고, 멤버 구성도 마음에 들어 곧바로 제안에 응했다”고 했다. 모란은 신현필과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같이 공부했고, 캠퍼스커플이던 한국인과 결혼한 뒤 국내에 살고 있었다. 모란은 “‘그레이트 오퍼튜니티’(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받아들였다”고 했다. 재즈밴드에 거의 필수로 들어가는 피아노 대신 가야금을 선택한 ‘신박’한 출발이었다.
2년 전 발표한 1집 제목은 <위상수학>. 수학을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이과 밴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연장선상인 듯 아닌 듯한 2집 <유사과학>에는 ‘점성술’ ‘혈액형’ ‘지구평면설’ 등 과학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과학처럼 믿는 유사과학을 소재로 한 연주곡 9개를 담았다. 새 앨범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신박서클 2집 앨범 <유사과학> 표지. 플랑크톤뮤직 제공
“우리는 늘 불안한 시대를 살며 신세계를 꿈꾼다고 해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금융위기, 촛불시위, 코로나 사태 같은 불안한 시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시대를 꿈꾸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우리 음악이 이런 불안한 시대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기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치 유사과학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박경소)
“요즘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워요. 진실을 찾기 힘든 우리 사회를 풍자해 음악으로 표현한 거죠.”(서영도)
“힘든 시대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기도 했고, 진실 찾기가 어려운 시대를 풍자한 것도 있죠. 믿음과 진실에 대한 혼돈으로 가득한 시대에 유쾌한 농담 같은 음악으로 받아줬으면 좋겠어요.”(신현필)
다소 난해했던 1집에 비해 2집은 대중적이어서 누구라도 편하게 들을 법하다. 재즈를 기반으로 하면서 가야금의 동양적 선율을 더해 독특한 매력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신박서클이 2019년 11월 서울남산국악당 기획공연시리즈 남산컨템포러리 ‘들어·보다’ 공연을 하고 있다. 나승열 작가 제공
멤버들에게 추천곡을 꼽아달라고 했다. 서영도는 ‘밀실의 선풍기’를 택했다. “제가 만들기도 했고, 달그락거리는 선풍기 모터 소리를 가야금 연주로 표현한 게 좋아서요.”
모란은 ‘평면지구’를 꼽았다. “드럼 연주자로 볼 때 이 곡 리듬과 박자가 좋아요. 멜로디가 한 박자씩 이어져 곡 제목과 달리 지구처럼 동그랗게 느껴져요.”
신현필은 ‘당신의 혈액형’을 들었다. “경소씨가 탈춤 장단으로 곡을 만들어보자고 화두를 던지면서 작업한 곡이죠. ‘시’와 ‘라’, 2개 음으로 시작한 곡인데 만들고 나니 결과가 괜찮았어요.”
박경소는 ‘피톤치드’를 골랐다. “가야금으로 시작하는 곡인데, 연주를 재미있게 잘했어요.(웃음) 다양함을 보여주는 곡이어서 좋아해요.”
신박서클. 왼쪽부터 색소폰 신현필, 가야금 박경소, 베이스 서영도, 드러머 크리스티안 모란. 플랑크톤뮤직 제공
멤버들은 1집 때는 만들지 않았던 뮤직비디오도 제작했고, 직접 출연까지 했다.
“‘사카린’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는 사카린을 대신해 설탕을 먹었어요. 음식에 넣은 게 아니라 생으로 설탕을 먹은 건 너무 오랜만이어서 색다른 경험이었죠.”(신현필)
“‘밀실의 선풍기’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을 찍었어요. 처음엔 누워 있기만 해서 쉬운 줄 알았죠. 마지막에 베개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몇번 실수하다 보니, 대여섯번 다시 찍었죠.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박경소)
앞으로 계획을 물었더니 신현필은 “코로나가 빨리 잡혀서 많은 분들 앞에서 연주하면 좋겠다”고 했다. 신박서클은 서울시가 주최하는 온라인 공연 ‘2021 서울국악축제’(10월10일 오후 4시)에서 2집 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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