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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대 위 두려움에 맞서 싸우는 ‘피아노 검투사’”

등록 2021-09-07 15:21수정 2021-09-08 02:41

발렌티나 리시차 이메일 인터뷰
9일 대구·11일 서울서 내한공연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오푸스 제공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오푸스 제공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는 화려한 기술과 파괴적인 힘으로 몰아치듯 연주해 ‘피아노 검투사’로 불린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 탓에 국외 연주자들의 내한공연이 잇달아 취소되는 가운데서도 리시차는 한국의 방역 능력을 믿고 한국 팬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의견을 보내와 공연이 이뤄졌다.

당시 그는 마스크를 쓴 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3악장을 연주하다 눈물을 흘리며 중단했다. 다시 무대로 돌아와 4악장은 연주하지 않고 50분간의 긴 앙코르를 선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1년6개월 만에 내한하는 리시차는 오는 9일 대구 콘서트하우스와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이번엔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피아노 소나타 2번’, 쇼팽 ‘4개의 스케르초’와 ‘환상 폴로네이즈’를 연주한다. 마침 조성진도 쇼팽 ‘4개의 스케르초’를 18일 같은 장소에서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오푸스 제공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오푸스 제공
리시차는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피아노 검투사’란 별명답게 강인함이 묻어나는 공격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그는 내한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와 쇼팽 곡을 선곡한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이 두 작곡가를 가장 좋아해서다. 내 안에 러시아인이나 폴란드인 피가 흐르고 있어서 이 곡들을 고른 게 아니다. 그건 편견이다. 내가 이 두 작곡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베토벤을 연주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독일인이 돼야 할 필요는 없다. 음악은 그 자체로, 영혼으로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지난해 베토벤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하다 눈물을 흘리며 중단한 이유도 설명했다. “공연 도중 쉬는 시간에 전화 메시지를 확인하는 실수를 했다. 내 조국 우크라이나가 코로나로 록다운(봉쇄)에 들어가 국경을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다. 클래식에서 가장 슬픈 작품 중 하나인 ‘함머클라비어’의 느린 3악장을 연주하는 동안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슬픈 감정과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 후 상황도 이어 말했다. “최악의 예감은 현실이 됐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나는 엄마를 품에 안지도,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보내드려야 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내게 매우 고통스러운 상처로 남아 있다.”

리시차는 당시 한시간 가까운 앙코르를 받았다. 힘들지 않았을까? “나는 연주 시간을 분이나 시간 단위로 재지 않는다. 관객이 더 요구한다면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릴 수 있다. 관객이 만족할수록 나는 더한 기쁨을 느낀다. 음악가는 무대 위에서 그 순간을 위해 살아간다. 이건 기쁨이지, 일이 아니다.”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오푸스 제공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오푸스 제공
‘피아노 검투사’란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봤다. “이게 제 별명인 줄 몰랐다. 하지만 맞는 말이다. 관객 앞에 서는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마음속으로 검투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쇼가 시작되기 전에 두려움과 맞서 싸워야 한다. 큰 작품을 연주할 경우 만만치 않은 기술적 어려움에 부딪히고, 수많은 연습으로 무장도 해야 한다. 뜨거운 무대 조명 아래 맨몸으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승리를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 승리는 관객의 열정적인 반응과 박수갈채에 달려 있다.”

리시차는 클래식 음악계 최초로 ‘유튜브 스타’ 타이틀을 가진 아티스트다. 2007년 처음 유튜브에 연주 영상을 올린 뒤 클래식 음악가로는 이례적으로 1억뷰 이상을 기록한 유튜브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 3악장,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23번’ 등의 연주 영상은 조회수 1천만뷰를 훌쩍 넘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유튜브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 자신을 ‘유튜브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많은 젊은 음악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유튜브를 활동 초기에 홍보 도구로 활용했다. 사람들이 나를 잘 몰랐을 때, 관객이 나를 찾는 데 도움을 줬다. 지금은 달라졌다. 나는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도록 만들고, 음악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려고 유튜브를 한다. 만약 유튜브 스타가 되고 싶었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만을 선택해 화려한 영상으로 제작했을 것이다.”

그는 베토벤 소나타를 예로 들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내 마지막 프로젝트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다. 베토벤 소나타 32개 가운데 2개 정도만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좋아한다. 유튜브 스타가 되길 원했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더 많이 듣게 해주고 싶고, 그들의 지평을 넓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유튜브를 활용할 뿐이다.”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오푸스 제공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오푸스 제공
리시차는 공연마다 앙코르까지 합치면 세시간 넘는 연주를 선보이곤 한다. 공연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하는 ‘연습벌레’다. “‘어떻게 그런 체력과 집중력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 읽는 거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 대부분 ‘좋아하죠’라고 답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일생을 보내길 원하세요?’ 역시 대부분 ‘당연하죠’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연습을 즐겁게 여긴다. 연습할 때마다 작곡가가 곡에서 드러내고 싶은 의미를 분석하고 그 속에서 작고 소중한 새로운 걸 찾아낸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내한공연 포스터. 오푸스 제공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내한공연 포스터. 오푸스 제공
리시차는 현재 미국 국적이지만 자신이 태어난 우크라이나의 정치 상황을 놓고 정치적 발언을 자주 해왔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 정부를 비판해 왔다. 이런 정치 성향으로 종종 연주회나 협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되레 사람들이 자신의 발언에 관심을 덜 가질 것을 주문했다. “나는 피아니스트로서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정치를 하면 최악의 정치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관심을 덜 가져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와 백신 문제를 놓고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의사가 한 말보다 유명한 스타가 한 말을 더 믿는다. 이해할 수 없다. 유명한 스타가 한 말보다 전문가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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