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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지원사업 신청자 상호평가제, ‘막말 심사평’ 전달 논란

등록 2021-10-12 11:42수정 2021-10-13 02:38

‘다중예술 지원사업’ 예비심사에 ‘경쟁자들끼리 서로 평가’ 도입
익명 뒤에 숨은 차별·혐오 담은 심사평 통보…예술인들 폐지 촉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현장 예술인들을 지원하면서 새롭게 도입한 경쟁자 상호평가 방식의 ‘동료평가제도’가 인권침해 시비에 휩싸였다. 이 제도에 반대하는 예술인 375명이 폐지 촉구 성명을 낸 데 이어 여성 혐오와 차별, 모욕 등 인권침해를 낳는다며 지난 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이에 예술위는 12일 인권위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진정인들은 “이 제도가 상호 비방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모욕을 초래하는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속에나 있을 법한 정책 실험을 벌였다”며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를 통해 인권 침해적인 제도가 폐지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예술위는 지난 4월 ‘다원예술 지원사업’ 예비심사에서 지원자가 직접 심사위원이 되어 경쟁자들의 지원서를 평가하는 동료평가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다. 소수 전문가의 밀실 심사에 따른 폐해를 막는다는 취지였지만, 시행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특히 혐오와 차별, 모욕 등이 담긴 익명의 심사평을 당사자들에게 여과 없이 원문 그대로 통보한 게 문제로 지적된다.

사업에 응모했던 신아무개 작가는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로 보임’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적정 지원 배정액 0원’이라는 결과를 받고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이밖에 “극단적으로 한쪽 성향이 강한 사업에 지원을 해줄 필요는 없다”, “여성노동자만 소외된 아픔을 겪는 것은 아니다”, “요즘 문제시되는 젠더 이슈를 다룬 듯한데 제발 여자, 남자로 가르지 말고 네 편 내 편을 가르지 말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고 신 작가는 전했다. 20년 경력의 한 여성 연극인은 ‘수준 낮음’이란 한줄 심사평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신 작가는 “<오징어 게임>처럼 경쟁자를 떨어뜨려야 자신이 지원받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지원자들이 익명의 그늘에 숨어 폭력적인 심사평을 한 것 같다”며 “국가기관인 예술위가 기본적 인권 상식에도 반하는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한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원자들이 심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무조건 탈락하는 심의 방식도 문제로 꼽힌다. 800여명의 지원자가 조를 나눠 각각 40여건 안팎을 심사하도록 하면서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는데, 이런 방식에 동의하지 않아 응모 자체를 기피한 예술인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6건에 이르렀다.

기존 특정 예술 장르에 편입되지 않는 새로운 예술 흐름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다원예술 지원사업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파장으로 2015년을 끝으로 중단됐다가 6년 만인 올해 어렵게 재개됐다. 선발된 작가는 500만~3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예술위 혁신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했던 김미도 서울과기대 교수는 “최종 심의 과정에 지원자들이 참가할 수 있는 공개발표제를 도입해 투명하고 공정한 심의가 이뤄지도록 제안했었다”며 “예비심사 때부터 지원자들끼리 서로 심의하도록 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분야에 밝은 한 공연예술가는 “동료평가제 자체는 유럽의 여러 나라도 도입한 제도”라면서도 “다만, 현장 예술가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채 예상되는 여러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예술위 지원총괄 부서 관계자는 “전문가 중심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기존 심의제도로는 예술 현장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도입한 제도인데 준비가 부족했다”며 ”현장 예술인들이 반대하면 내년부터는 굳이 이 제도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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