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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픈 사람은 죄가 없다

등록 2021-11-27 14:58수정 2021-11-27 20:08

[한겨레S]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질병 다룬 그림들

‘신의 뜻’ 어긋나면 병 걸린다거나
기질 탓 아프다는 터무니없는 믿음
‘부정적 태도, 잘못된 습관 탓’하며
지금까지도 질기게 개인 탓 이어져
뭉크, <병든 아이>, 1885~1886년, 캔버스에 유채,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뭉크, <병든 아이>, 1885~1886년, 캔버스에 유채,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멀쩡히 잘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픽 쓰러지더니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난다. 죽은 사람의 빈자리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황망함과 불안이 싹텄다. 건강했던 사람이 죽은 원인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혹시 다음 차례는 나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질병과 죽음의 이유를 명쾌하게 댈 수 없는 가운데 오직 종교만이 그럴듯한 설명을 해주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를 열고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육신에 질병이 드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질병은 신의 뜻에 어긋나게 산 사람에게 내려지는 ‘심판’이라는 것이다. 결국 공의회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먼저 영혼의 건강을 돌본 뒤에 육신을 치료하는 약을 처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하늘이 내리는 심판의 화살

교회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따라서 옛 서양인들은 영혼의 건강을 잘 돌보기 위해 종교에 매달렸고, 이를 통해 질병과 죽음의 공포를 달랬다. 흑사병이 돌았던 때에는 더욱 그랬다. 이때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성인이 3세기 로마의 기독교 순교자 성 세바스티아누스이다.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모습을 보면 온몸에 화살이 꽂혀 마치 고슴도치 같다. 하지만 그는 희한하게도 죽지 않고 하늘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이유가 있다. 세바스티아누스는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근위 장교였는데, 어느 날 투옥된 기독교 신자들을 탈출시키다가 그만 발각되고 만다. 결국 화살받이가 되는 형벌을 받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죽지 않았다. 신의 가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세바스티아누스의 이야기에 특별히 감화되었다. 병이라는 건 하늘에서 죄 많은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땅을 향해 무작위적으로 쏘아 내리는 화살이었다. 하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 속에서도 사람들은 세바스티아누스처럼 기적적으로 살아남길 원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환자와 그 가족을 지키는 수호성인이 된 이유다.

안드레아 만테냐, &lt;성 세바스티아누스&gt;, 1506년께, 캔버스에 템페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조르조 프란케티 카도로 미술관
안드레아 만테냐, <성 세바스티아누스>, 1506년께, 캔버스에 템페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조르조 프란케티 카도로 미술관

그렇지만 아무리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보호하려고 해도 화살을 못 피하는 이도 있고, 한발만 빗맞아도 죽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은 한층 구체화되었다. 영혼의 건강을 잘 돌보지 못한 이는 ‘자신의 성격에 어울리는 병’에 걸리는 식으로 신의 심판을 받는다고 여긴 것이다. 예를 들어 결핵은 격정적이고 무모하거나 지나치게 감수성이 예민해 세속의 공포를 견뎌내지 못하는 광기 어린 인물이 잘 걸리는데, 그러한 기질이 분출되지 않고 억눌리는 경우 결핵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뭉크는 가족 핏줄 속에 마치 원죄처럼 병을 부르는 기질이 흐르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도 결핵에 걸렸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진저리 치듯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지는 타고나길 신경질적이었고, 종교적으로는 강박적이셨다. 거의 신경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광기의 씨앗을 물려받았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곁에는 공포와 슬픔과 죽음의 천사들이 있었다.”

실제로 뭉크의 가족들은 차례차례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먼저 뭉크가 고작 5살밖에 안 됐을 때인 1868년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뒤 더욱 폭발적으로 화를 냈고, 점점 종교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집안엔 먹구름이 걷힐 날이 없었고, 이 ‘광기의 씨앗’은 가족들의 몸과 영혼에 옮겨붙어 싹을 틔울 준비를 했다. 몇년 후 어머니를 떠나보냈던 폐결핵이 다시 뭉크의 집을 찾아왔다. 처음에 희생자는 뭉크가 될 것으로 보였지만 피를 토해내던 뭉크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고, 대신 폐결핵을 떠안은 주인공은 누나 소피가 되었다. 소피가 투병 끝에 숨을 거두자 뭉크는 큰 충격을 받는다. 엄마처럼 의지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뭉크의 당시 심정은 그림 <병든 아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눈에도 병색이 짙어 보이는 소녀가 희미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살짝 벌린 소녀의 입은 그녀가 자연스럽게 숨 쉬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해준다. 옆에서 흐느끼며 고개를 떨군 어머니는 ‘살려달라’고 신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기도는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그림의 실제 모델이 되어준 사람은 따로 있다고 하지만, 뭉크에겐 작품 속 소녀는 소피이며, 곁의 어머니는 소피를 돌봐주던 이모나 다름없다.

‘저주받은 피’

질병은 소피의 목숨을 거둬간 후에도 뭉크의 가족 곁을 계속 맴돌았다. 1895년 남동생 안드레아스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렴으로 사망한 데 이어, 1898년에는 여동생 레우라가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뭉크는 한탄했다. “질병은 줄곧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폐결핵균은 흰 손수건에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핏빛 깃발을 꽂았다.” 아마 ‘저주받은 피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다음 차례는 항상 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뭉크는 80살 생일까지 치렀다. 그 자신조차 의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비웃을지 모른다. 하늘에서 쏜 ‘심판의 화살’을 맞아서 병에 걸린다니, 독특한 성격 때문에 병이 싹튼다니, 얼마나 미개한 생각인가.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이 ‘미개함’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정적 사고방식을 못 버려서, 암이 재발한 것 같아요” 유의 ‘암을 부르는 성격’이 있다는 이야기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사람들은 질환이 ‘그냥 생기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 한다. 이때 제일 쉬운 선택이 아픈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이다. <아픈 몸을 살다>의 저자 아서 프랭크는 이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아픈 사람에게 암을 부르는 성격이 있다고 믿을 때, 아픈 사람 이외의 모두에게 세계는 덜 취약하고 덜 위험해진다. 아픈 사람조차 병이 그냥 생겼다기보다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생겼다고 믿기도 한다. 불확실성보다는 죄책감이 더 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심판론’도 질긴 건 마찬가지다. 편한 인스턴트 음식만 먹고 정기적인 검진도 받지 않으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거나 운동을 게을리하며 과체중 상태로 방만하게 지내면 ‘병에 걸려도 싼’ 존재가 된다. 이에 대해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조한진희는 “개인의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에 질병이 왔다는 생각은 바로 그 개인의 ‘습관’에 사회의 구조, 문화, 빈곤, 불평등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고 말한다. 장시간의 불안정노동, 성차별, 극심한 경쟁 속에서 피폐해진 개인은 신자유주의가 권장하는 ‘자기 관리’를 할 에너지를 비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에게 ‘화살’을 쏜 이는 누구일까.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그림을 매개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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