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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영화관·OTT 넘나드는 용감해진 단막극…콘텐츠 새 지평 열길

등록 2021-12-18 07:59수정 2021-12-18 11:19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드라마스페셜’
이번 <드라마스페셜>은 시네마 4편과 단막극 6편으로 매체 변화를 반영했다. 그 중 '사이렌'은 수작으로 꼽힌다. 한국방송 제공
이번 <드라마스페셜>은 시네마 4편과 단막극 6편으로 매체 변화를 반영했다. 그 중 '사이렌'은 수작으로 꼽힌다. 한국방송 제공

12년째 이어오는 <드라마스페셜 >(한국방송2)이 올해는 야심차게 시네마 4편과 단막극 6편으로 찾아왔다 . 시네마편은 공상과학( SF), 호러 , 스릴러 등 장르물을 표방하며 , 극장 개봉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 OTT) 선공개 후 티브이( TV)로 방영했다 . 만듦새는 들쭉날쭉하지만 , 최근 변화된 매체 환경을 반영한 의미 있는 기획이다 . 몇 가지 주목할 점을 짚어 보겠다 .

지난달 12일 방영한 <사이렌> 은 강릉국제영화제에 출품될 만큼 문제의식도 뚜렷하고 장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수작이다 . 영화는 소음 공해를 해결하는 신기술이 개발된 미래를 배경으로 , 의문의 사건을 통해 지역 간 착취의 문제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 그동안 서울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 쓰레기 , 핵발전소 , 방폐장 , 송전탑 , 군사 시설 등 온갖 해로운 것들은 지방으로 보내오지 않았던가 . 삶의 터전을 지키려 항의하는 주민들에겐 지역이기주의니 , 보상금을 더 타려는 생떼 등의 프레임을 씌우면서 . 드라마는 이런 착취의 역사를 고발하면서 , 현재 우리가 겪는 팬데믹도 유구한 지역 간 착취와 ‘내가 사는 도시만 쾌적하면 그만 ’이라는 무책임한 무지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생긴 것이라는 서늘한 경고를 들려준다 . 주인공의 복수가 실패한 듯 보였지만 , 서울에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알리는 엔딩은 긴 여운을 남긴다 .

시네마 4편 중 &lt;에프(F)20&gt;은 영화 개봉 뒤 여러 해석이 나와 티브이에서는 방영하지 못했다. 한국방송 제공
시네마 4편 중 <에프(F)20>은 영화 개봉 뒤 여러 해석이 나와 티브이에서는 방영하지 못했다. 한국방송 제공

 극장에서만 선보인 <에프(F)20>은 실패의 사례로 곱씹을 만하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발하려는 기획의도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 그러나 극장과 오티티를 통해 영화를 본 정신장애인 단체와 가족들이 상영금지 청원을 내는 등 시청자 항의가 쏟아져, 티브이로 방영되지 못했다 . 기획의도와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된 셈인데 , 왜 이런 참사가 빚어진 걸까 . 아마 제작진은 기획의도에 충실히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 여전히 영화가 오해받고 있다고 억울해할지 모른다 . 여기에는 큰 간극이 있다 .

드라마에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있다. 물론 제작진은 고발의 의미로 넣었을 것이다 . 하지만 당사자들에겐 상처가 되살아나는 경험이다 . 이는 성폭력을 고발한다면서 성폭력을 그대로 재현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더 중요한 것은 엄마의 돌발 행동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 . 영화에서 조현병으로 진단받은 인물들은 오해의 대상이 될 뿐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 오히려 아들의 조현병이 발각되어 지역사회로부터 배척당할까 두려워하는 엄마의 내적 갈등이 깊어지다 폭발한다 .

제작진은 엄마의 폭발을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내면화한 주변인의 광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작품이 사회적 편견을 비판하는 기능을 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이 보기에, 그 엄마는 ‘주변인의 광기’를 나타내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사자이다. 실제로 영화에는 엄마가 점점 망상과 환각을 겪는 듯한 심리 스릴러적인 연출이 담겨있다. 결국 엄마는 광기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로써 ‘정신장애인이 곧 살인자’라는 잘못된 프레임이 재생산된다. 가뜩이나 조현병은 가족력도 있기에, 가족들은 늘 사회적 편견에 시달려왔다. 그런데 그 가족이 마침내 발병해서 살인하는 것으로 그려졌으니, 당사자들은 강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에도 동물 학대 사건이 계속되자 이런 대사가 나온다 . “모르지 . 또 누군가 미쳤거나 미쳐가는 중인지. ” 제작진은 우리 사회의 편견과 배척이 계속 광기를 양산한다는 주제 의식을 담은 대사라 생각할 테지만 , 당사자들은 계속 정신장애인과 가족을 잘 감시하고 색출해야 한다는 반인권적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룰 때, 명심할 것이 있다. 언제나 당사자들이 작품을 어떻게 볼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시나리오 단계부터 당사자들의 모니터를 거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 또한 당사자들의 고통을 파고들면서 , 이를 문학적 비유나 예술적 알레고리의 재료로 삼아서는 안 된다 . ‘재현의 윤리 ’를 신경 쓰지 않으면 , 좋은 의도와 달리 비윤리적인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 이는 <통증의 풍경 >도 빠진 패착이다 .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존재의 연쇄살인과 고독사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 시적인 화면과 모호한 서사가 이해를 가로막아 , 난해함의 안개가 걷히고 나면 ‘가난 혐오 ’의 쓴맛만 남는다 .

실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단막극 중 가장 인상적인 &lt;셋&gt;. 한국방송 제공
실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단막극 중 가장 인상적인 <셋>. 한국방송 제공

단막극 편은 여성주의적 감성이 돋보인다 . <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 > 은 평작이지만 , 딱밤 한 대를 통해 상대 남성의 배려 없음과 무신경함을 감지해내는 섬세한 감수성을 일깨운다 . 남자친구의 사소해 보이는 폭력성과 이기심을 참지 말고 , 배려심 많은 남자와 사귀어야 외롭지 않다는 교훈도 유익하다 . < 그녀들 > 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세자빈 봉씨와 궁녀 소쌍의 동성애 스캔들을 다른 각도에서 상상한 사극이다 . 금기시되는 소재인 레즈비어니즘을 다룬 것도 도발적이고 , 이를 궁중 암투를 이기는 여성들 간의 우애와 사랑으로 그린 것도 의미 있다 .

< 셋 > 은 단막극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 중학생 시절 한 아이의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세 친구가 12 년 만에 만나 피의 복수를 펼친다 . < 여자 , 정혜 >(2005) 에는 친족 성폭행의 피해자가 성인이 되어 칼을 품고 가해자를 찾아갔다가 자기 손만 베이고 주저앉아 우는 장면이 나온다 . 2021 년에는 실제로 , 의붓아버지에게 학대와 성폭행을 당한 여중생과 친구가 동반 자살한 사건도 있다 . 이런 사례에 비한다면 , 세 친구가 피의 복수를 감행하는 것 자체가 진일보한 상상이다 . 물론 복수는 생각처럼 쉽지 않고 우여곡절을 겪는다 .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세 친구는 서로에 대한 묵은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고 우정과 연대를 회복한다 .

매체 다변화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갈수록 사라지는 지금, <드라마스페셜>이 더욱 용감한 기획으로 새로운 콘텐츠의 지평을 열길 기원한다 .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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