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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일관계 얼어붙어도…연극교류는 20년째 뜨겁다

등록 2022-02-14 19:00수정 2022-02-16 09:52

[제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현장]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서
‘하얀 꽃을 숨기다’ 등 3편 선봬
2002년부터 양국 50편씩 소개
“국제 연극 교류사에 유례없어

‘오장군의 발톱’ 등 일본서 실제공연
국내서도 매년 일 작품 무대 올라
낭독교류는 10회로 1단계 마무리
“새 시대엔 새 방식으로” 2막 예고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낭독공연 장면.  에뻬아트피플 제공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낭독공연 장면. 에뻬아트피플 제공
12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좌석이 가득 찼다. 낭독공연인데도 관객들은 110분 동안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몰입했다. 일본에서 호평받은 작품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번역 이혜정, 연출 이양구)은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를 다룬다. 묵직한 주제지만 수채화처럼 담담한 필치여서 때론 엷은 미소가 번지게 한다. 공연 뒤 이어진 온라인 화상 대화에서 일본의 극작가 요코야마 다쿠야는 “두 나라의 정치 상황과 무관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공연은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의 일환이다. 13일엔 극작가 다니 겐이치가 2019년 ‘후쿠시마 3부작’으로 발표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1986년: 뫼비우스의 띠>(번역 성기웅, 연출 부새롬)를 선보였다. 작가가 고향 인근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을 자전거를 타고 2년 반 동안 돌아보며 취재해 만든 작품이다. 첫날인 11일엔 이시하라 넨의 <하얀 꽃을 숨기다>(번역 명진숙, 연출 설유진)가 관객과 만났다. 2001년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변경 사건’을 바탕으로, ‘여성국제전범법정’ 증언대에 섰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에 감화된 이들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압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1986년: 뫼비우스의 띠> 낭독공연 장면.  에뻬아트피플 제공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1986년: 뫼비우스의 띠> 낭독공연 장면. 에뻬아트피플 제공
두 나라 연극인들의 교류가 시작된 건 2002년이었다. 이후 해마다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 오가며 희곡집을 펴내고 낭독공연을 열었다. 그동안 10권의 <현대일본희곡집>을 펴내 일본 극작가 50명의 작품 50편을 소개했고, 일본에서도 <현대한국희곡집> 10권을 펴내 한국 극작가 50명의 작품 50편을 보급했다. 두 나라 관계가 차갑게 얼어붙어도 교류는 계속됐다. 코로나19가 번지자 비대면 화상 연결로 대체했다. 블랙리스트 후폭풍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이 끊기자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소속 연극인들이 사비를 모아 비용을 충당하기도 했다. 공공 극장들은 공연장을 무료 대관하며 지원했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 부회장인 이성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제 연극 교류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알차고 활발하게 작품을 교류해왔다”며 “두 나라 연극인들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낭독공연이 끝난 뒤 일본에 있는 원작 극작가 요코야마 다쿠야와 온라인 화상 대화를 하기에 앞서 출연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임석규 기자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낭독공연이 끝난 뒤 일본에 있는 원작 극작가 요코야마 다쿠야와 온라인 화상 대화를 하기에 앞서 출연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임석규 기자
소개된 작품들이 실제 공연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 장진의 <허탕> 등이 잇따라 일본 무대에서 선보였다. 2020년엔 이보람의 <소년B가 사는 집>이 일본 문화청 예술제상 우수상을 받았다. 일본 작품이 국내에 끼친 영향도 크다. 해마다 수십편의 일본 작품이 공연돼 2000년대 후반엔 ‘일본 연극 붐’이 일기도 했다.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의 문제들을 포착해 섬세한 심리묘사로 풀어내는 ‘조용한 연극’의 유행도 한·일 연극 교류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일본 작가들이 두 나라 근대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내놓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극작가 겸 연출가 시라이 게이타는 2020년 윤동주를 소재로 한 <별을 스치는 바람>에 이어 지난달엔 명성황후 시해를 다룬 <어느 왕비의 죽음>을 도쿄 무대에서 공연했다. 이성곤 교수는 “정치적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한국 연극의 특성이 일본에서는 꽤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며 “유령이나 죽은 사람 등 비현실적 존재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타임슬립’ 등 일본식 극작술은 국내 연극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하얀 꽃을 숨기다> 낭독공연 장면.  에뻬아트피플 제공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하얀 꽃을 숨기다> 낭독공연 장면. 에뻬아트피플 제공
한·일 연극 교류는 이제 전환점을 맞았다. 교류 행사를 각각 10회까지만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열린 이번 ‘제10회 낭독공연’을 끝으로 1단계 교류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끝은 아니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 회장인 심재찬 연출가는 “이제 새로운 시대감각과 세대에 맞는 교류 방식을 모색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권지현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사무국장은 “양쪽이 각각 회장단 세대교체와 함께 새로운 방향성과 교류 방식을 협의해가기로 했다”며 “일본은 이미 새 회장단을 꾸렸다”고 전했다. 두 나라 연극인들의 교류는 새로운 트랙에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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