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티브이엔)는 노희경 작가의 신작이자, 이정은, 차승원, 이병헌, 신민아, 한지민 등의 출연작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이런 초호화 배역이 가능한 것은 옴니버스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20부작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다. 어떤 에피소드에서 주연이었던 사람이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조연이거나 단역이 된다. 에피소드가 쌓일수록 마을 사람들 전체가 각자 사연을 지닌 주인공이 된다. 여기서 제주의 ‘괸당 문화’가 독특한 배경이 된다. 모두를 ‘삼춘’이라 부르며 일가친척처럼 관심이 많다. 좀처럼 외지인들에게 곁을 주지 않고 한 몸처럼 움직이는 해녀들, 중년에 되어서도 끈끈한 학교 동창 등 도시에선 보기 힘든 폐쇄적인 공동체 문화다. 드라마는 제주 방언을 자막과 함께 들려주며, 제주 사람의 일상을 보여준다. 관광지 제주의 풍광을 스케치하듯 담거나, 제주를 고향으로 회고하는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현재를 사는 제주 사람의 관계에 주목하기에, 정겹고도 탈출하고픈 ‘괸당’ 공동체가 오롯이 살아난다.
드라마는 1~3회에서 중년의 로맨스를 풀어내며 호평받았다. 감정을 파고드는 대사와 긴장을 쥐락펴락하는 전개가 일품이었다. 그러나 5·6회에서 10대 임신을 다루면서 낙태하려던 여고생이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출산을 결심한다는 진부한 전개로 시청자의 공분을 샀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단지 “에피소드들 간 편차가 크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 극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문제가 5·6회에서 불거진 건 아닐까.
드라마는 각 세대의 사랑을 그린다. 이들의 사랑에는 현실적이고 통속적인 장벽이 있다. 중년의 사랑은 추억을 고리로 삼지만, 돈과 혼인 여부가 장벽이 된다. 젊은이의 사랑은 매력에 이끌리지만, 연애 경험이 장벽이 된다. 일찌감치 외지로 떠난 예쁜 여자와 그를 짝사랑했던 가난한 고향 오빠의 재회도 있다. 이들 사이엔 지역과 계급의 장벽이 있다. 반항적인 전교 1등 여고생과 소년의 사랑에는 임신과 아빠들끼리 앙숙이라는 장벽이 끼어든다.
드라마 속 여성들은 꽤나 주체적이고 발랄하다. 억척스럽게 장사해 부자가 된 은희(이정은), 개방적이고 용감하게 지역과 남자를 떠도는 영옥(한지민). 키스한 남자에게 정색하며 “내가? 오빠를? 사랑해서?” 라는 한마디로 단념시키는 선아(신민아). 공부로나 연애로나 남자를 리드하는 영주(노윤서) 등. 드라마는 이들의 감정을 면밀하게 그린다. 가령 첫사랑의 등장에 설레는 은희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고, 중산층 전업주부가 된 선아의 우울증도 탁월하게 묘사된다. 임신임을 알게 된 영주의 낭패감과 낙태시술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 죄의식도 생생하다. 그렇다면 개성 있는 여성상을 보여주고 그들의 내면에 주목하는 드라마로 봐도 될까? 아니다. 좀 더 살펴보면 진심으로 공을 들인 대목이 따로 있다. 바로 여자와의 관계로 주눅 들고 상처 입은 남성에 대한 위무이다.
한수는 로맨스를 이용해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이다. 한수의 행동은 상대를 속이는 파렴치한 짓이기도 한데, 은희가 사실을 알고 분노한 뒤에도 한수는 변명할 기회를 얻는다. 이후 드라마는 한수의 부부 사이를 앞서 묘사했던 것보다 훨씬 돈독하게 그린다. 이로써 한수는 착한 가장이고, 착한 첫사랑으로 용서를 얻는다. 은희는 기꺼이 2억 원을 투척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한수와의 우정도 지켜주었어야지”라며 오히려 변호한다. 은희는 첫사랑 한수를 보내고 그를 우정으로 간직하지만, 이런 결말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한 여자’의 헛물켠 사연이 된다. 은희가 전문직 여성이 아닐 뿐, ‘아는 맛’이다. 드라마는 영옥의 사연이 무엇인지 아직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영옥을 향한 정준의 마음은 말로, 심지어 글로, 정확하게 기술된다. ‘헤픈 여자’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남자의 순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선아와 동석의 에피소드에서도 여행지에서 혼자 가버리는 여자의 ‘빡침’보다 고장 난 똥차에 발이 묶인 남자의 열패감에 더 감정이 이입되도록 한다. 결국 선아는 중산층 남자와 결혼하지만 우울증으로 이혼하고, 아이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선아는 고향에 돌아와 동석과 재회하고 심지어 바다에 빠진다. 고향 오빠 버리고 간 잘난 여자의 불행이 전시되는 셈이다.
영주와 현의 이야기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드라마는 영주의 내레이션으로 그가 얼마나 제주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 들려주지만, 탈출에 걸림돌이 될 임신을 영주가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낙태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영주 곁에서 현은 여성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듯 굴면서도, 혼자 유아용품점을 서성이고 “내 아이이기도 하잖아”라는 맹랑한 소리를 한다. 드라마는 현의 입장에 공감하듯, 이성적이던 영주가 느닷없이 자신이 임신부임을 선포하고 “너 믿고 직진”을 외치는 ‘캐릭터 붕괴’를 펼친다. 아마도 영주의 출산은 굉장한 갈등 끝에 앙숙인 아버지들 간의 화해를 이루고, 아기는 어린 영주가 그랬듯 ‘괸당’ 공동체 안에서 자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홀로 아이를 키워온 두 아버지의 사연이 또 절절하게 뿜어져 나올 것이다.
딸의 꿈을 위해 여자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 아버지, 과거 많은 여자를 품는 연하남, 가난한 나랑 짝이 될 생각도 없으면서 필요할 때만 내게 기대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 낙태하려는 여자 곁에서 대책 없이 ‘내 아이’를 꿈꾸는 소년, 홀로 아이를 키워온 아비 등 드라마에는 여자에 대한 순정을 품은 남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여자는? 잘났지만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헛똑똑이’들로, 불행할 뿐이다. 불현듯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작가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사랑을 믿지도, 남자를 연민하지도 않는 ‘요즘 여자들’을 향한 노 작가의 시대착오적 엄포로 들린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