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태생 포르노 스타였던 치치올리나는 1987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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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배운 건 신문에서였다. <한겨레>가 창간하기 1년 전이었다. <조선일보> 국제면에 소개된 그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번 이탈리아 총선에서 젖가슴까지 드러낸 옷차림으로 맹렬히 선거운동을 벌여 화제를 모았던 헝가리 태생의 포르노 스타 일로나 스탈러(37)양이 개표 결과 2만여표를 획득, 당당히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1987년 6월18일치 기사다. 만약 당신이 1987년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여기까지만 읽고도 어안이 벙벙해졌을 것이다. 그렇다. 1987년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포르노 배우가 국회에 진출했다. 맙소사, 1987년은 대체 무슨 시대였을까?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뉴스던 시절이다. 포르노 배우라고?
내친김에 이날 국제뉴스들을 더 알아보자. 톱뉴스는 ‘갈수록 거세지는 유럽의 보수 회귀 바람’이다. 첫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유럽 대륙의 보수 회귀 바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영국 대처 내각 구성에서 막을 연 보수화 시대가 83년 서독 기민당, 86년 프랑스의 시라크 우파 연합정부 등장으로 이어지다가 이번 여름 영국-이탈리아 총선에서는 보수세력의 연승과 공산당의 참패로 발전하고 있다.” 역시 세계는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가며 망쳐왔다는 증거처럼 읽힌다. 다음 부분도 재미있다. “국가 간 협력과 인류애를 앞세운 좌파 쪽의 인터내셔널리즘이 밀려나고 그 자리에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내셔널리즘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국가 간 경제 마찰과 불투명한 미래가 이러한 경향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 문단은 2022년 국제 동향을 다루는 기사에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실어도 썩 어울릴 것 같다. 옛날 신문을 읽는 건 정말이지 흥미진진한 일이다.
1987년 이탈리아 국회의원이 된 포르노 배우 일로나 스탈러는 이탈리아어로 ‘귀엽고 통통한 소녀'를 뜻하는 ‘치치올리나'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1951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그는 1964년부터 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8년 일로나 스탈러는 호텔에서 일하다 이탈리아 남자와 만나 결혼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70년대 초반 포르노 제작자를 만난 일로나 스탈러는 섹스를 다루는 라디오 쇼에 출연해 명성을 얻으며 ‘치치올리나’라는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3년 <텔레포노 로소>(빨간 전화)라는 영화를 통해 본격적인 포르노 배우로 데뷔한다. 이후 미국판 <플레이보이> 지면에 등장할 만큼 유명해진 치치올리나는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치치올리나는 포르노 배우가 되기 전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미 1979년에 이탈리아 최초의 녹색당인 ‘태양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주목받는 여성 정치인이 거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1970~80년대의 서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가였다. 정치·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압도적으로 남성의 손에 의해 움직였다. 포르노 배우로 활동하면서 지속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던 치치올리나는 1985년 ‘급진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급진당은 일찍부터 나토(NATO) 가입과 핵에너지에 반대하고 대마 합법화를 외치던,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치 세력이었다. 그리고 1987년 총선에 출마한 치치올리나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세상이 뒤집혔다. 당시 세계의 모든 뉴스 채널은 치치올리나의 국회의원 당선을 무슨 러시아 혁명을 다루듯 보도했다. 포르노 배우가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은, 이미 포르노가 합법화된 국가들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던 사건이었다. 나 역시 당시 티브이 뉴스에서 치치올리나를 본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한쪽 가슴을 내보이는 유명한 장면이었다. 10대인 나로서는 도무지 그 장면이 삼켜지지가 않았다. 같이 티브이를 보던 부모님이 채널을 돌렸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만, 채널을 돌리지 않으셨으니 여전히 그 장면을 기억하는 것일 게다.
치치올리나는 보수적인 이탈리아 정치를 풍자하기 위해 섹스를 이용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치치올리나는 계속해서 해외 토픽에 등장했다. 임기 중인 1990년 걸프전이 터지자 그는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를 선택한다면 그와 섹스를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사랑(아니, 섹스)으로 세계평화를 쟁취하겠다는 치치올리나의 발표는 웃음거리가 됐다. 하지만 그는 진지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자신의 성적 매력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엄청난 도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이탈리아인들은 치치올리나를 국가적 수치로 여겼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치치올리나를 진지한 인물로 받아들이는 것을 꺼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섹스를 단순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만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치치올리나는 서유럽에서 가장 부패하고 보수적이던 이탈리아 정치를 풍자하기 위해 섹스를 이용했다. 마피아의 돈이 좌지우지하던 이탈리아 정계에서 그는 대중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일종의 유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치치올리나의 국회의원 당선을 두고 “부도덕함에 대항하는 부도덕함”이라고 말했는데,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찾기 힘들 것이다.
국회의원이 된 치치올리나는 이탈리아 특유의 과두정치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남성 국회의원들을 자신의 애칭을 풍자한 ‘치치올리니’(귀여운 뚱뚱한 남자애들)라고 불렀다. 치치올리나는 거침없었다. 그는 국회 단상에 올라가 “정부는 바뀌고 나라 문제는 그대론데, 여러분 얼굴은 언제나 그대로네요”라고 비웃었다. 치치올리나는 보수적인 이탈리아 학교 시스템에 제대로 된 섹스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첫번째 인물이었다. 그는 누구도 환경에 관심 없던 시절 급진적 환경정책과 동물권을 주창했다. 국회의원직을 맡은 5년 동안 이탈리아, 아니 서유럽에서 그처럼 진실되게 진보적인 주장을 펼치는 정치인은 거의 없었다. 한쪽 가슴을 드러내는 퍼포먼스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치치올리나의 정치적 생명은 5년 뒤에 끝났다. 다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일은 없었다. 1991년 치치올리나는 현존하는 작가 중 최고의 몸값을 지닌 아티스트 제프 쿤스와 결혼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섹스를 작품으로 만들어 공개하며 세상을 뒤흔들었다. 유명한 주류 아티스트가 자신의 포르노를 작품화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두 예술적 관종의 만남은 이른 이혼으로 끝났다. 이후 오랫동안 잊혔던 치치올리나는 2021년 미국 최대 포르노 사이트 폰허브(Pornhub)에서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해 만든 홍보 영상에 비너스로 출연해 다시 잠깐 뉴스에 등장했다. 루브르박물관은 “명작의 무단 사용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폰허브를 고소했지만, 어차피 보티첼리의 작품 역시 르네상스 시절에는 일종의 포르노였을지 누가 아는가. 여하튼 치치올리나는 칠순이 된 지금도 세상을 흔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2021년 미국 최대 포르노 사이트 폰허브에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해 만든 홍보 영상에 등장한 치치올리나. 유튜브 화면 갈무리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치치올리나는 대체 어떤 존재로 역사에 남을까? 썩어빠진 이탈리아 정치가 만들어낸 거대한 농담? 그저 전세계에 가슴을 드러내고 싶었던 역사적 관종? 아니면 성적 매력을 정치적 화력으로 바꾸어낸 여성 정치의 아이콘?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낸 당신은 포르노 배우를 진지한 여성 정치인으로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이 존재한다. 포르노를 반대하는 남성도 있다. 포르노 합법화를 찬성하는 여성도 있다. 포르노 산업의 여성 착취를 비판하는 남성도 있다.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제작하는 여성 감독도 있다. 물론, 포르노를 지난 반세기 동안 합법적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해온 서구와 우리의 잣대는 조금 다를 것이 틀림없다. 확실히 치치올리나는 진지하게 평가하기 조금 난감한 인물이다.
다만 치치올리나는 자신이 가진 것을 가장 열렬한 방식으로 이용해 잠시나마 이탈리아 정계, 아니 세계를 흔들었다. “나는 전투적인 여성”이라고 외치며 국회에 들어가 남성들의 정치적 자긍심에 상처를 내고 그걸 즐겼다. “핵 에너지는 다운! 섹스 에너지는 업!”이라는 그의 유명한 슬로건은 지금 돌아보자면 지나칠 정도로 순진무구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만큼 진심으로 가득한 정치 슬로건을 지난 몇년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과도한 민주주의가 국가를 망친다”며 철의 곤봉을 휘둘렀던 마거릿 대처가 20세기 여성 정치의 아이콘이라면, 치치올리나도 20세기 정치의 역사책에서 자신만의 챕터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을 것이다. 치치올리니의 세계에 치치올리나가 있었다.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