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빠는 학교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자 아빠는 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투자 대상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한 줄 요약이다. 벌써 20년이 지났다. 외환위기 직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가 나왔다. 하지만 책의 메시지를 진짜 자기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소수였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보니, 어느덧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메시지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제 누구나 투자를 한다. 부동산, 주식, 코인은 물론이고, 해외주식, 외환투자 등등. 젊은이들도 미술품 등을 사 모은다.
이런 시대의 반영일까. 지난 설에 <자본주의학교>(한국방송2)라는 맛보기(파일럿) 예능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10대에게 종잣돈 100만원을 주고 돈을 불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2부작 관찰예능이었다. 경제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불린 돈을 기부한다는 것도 착해 보이고, 청소년 출연자들을 응원하는 마음 등이 어우러져 반응이 좋았다. 이후 프로그램은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정규 편성되었다. 성인 출연자들이 합류하면서 현재 5회가 방송되었다.
<자본주의학교>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경제 교육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옳은 말이다. 노동소득만 소득인 줄 알고 열심히 저축해온 사람들의 박탈감이 하늘을 찌른다. 자본소득에 일찍 눈뜨고, 대출을 지렛대 삼아 부동산을 갈아타며 자산을 불려 온 사람들과의 격차를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다. 나는 왜 일찍부터 돈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 괴로워하는 이들이 많다. 재테크 콘텐츠가 범람하는 가운데, 경제에 관한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예능이라니 한국방송의 위상에도 걸맞다.
문제는 프로그램이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불안감만 가중한다는 데 있다. 가령 “우리 집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등기부 등본의 갑구와 을구를 볼 줄 안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갈 뿐, 실제로 등기부 등본의 갑구와 을구를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11살 아이가 새벽에 일어나 해외 주식을 사는 광경을 보여줄 뿐, 해외 주식 접근 방법이나 유의할 점을 알려주진 않는다. 청소년을 위한 경제 공부라면 우선 근로계약서 쓰는 법부터 알려주어야 할 것 같지만, 노동소득 따위는 아예 무시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좀스럽고 민망하다’. 큰 틀에서 보았을 때, 프로그램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본의 아니게 폭로하여 이름값을 해낸다.
프로그램이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것은 세습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아이들이 사업을 구상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은 부모의 문화자본이다. 어린 시절 <아빠! 어디가?>(문화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얻었던 윤후는 돈을 불리기 위해 음원을 출시하려 한다. 선망하는 뮤지션의 프로듀싱을 받는데, 아버지 윤민수의 인맥을 통해서다. 물론 윤후가 그동안 인지도를 쌓고 녹음을 하는 데는 본인의 재능과 노력이 쓰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원천은 아버지의 문화자본이다. 부모의 문화자본은 사후에도 힘을 발휘한다. 고 신해철의 딸이 ‘마왕’ 이모티콘을 만들고, 신해철의 생전 모습이 담긴 파일을 편집해 일일카페에서 트는 것은 본인의 창의력과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아빠를 빼닮은 딸을 보며, 신해철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담아 딸의 활동을 기꺼이 도우려는 많은 팬이 이미 존재한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위의 경우도 그 일환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문화자본을 일반화하긴 어렵다. 심지어 자이언티와 영탁의 프로듀싱이라니, 연예인의 자녀라 할지라도 프로그램이 아니었던들 얻기 힘들 기회이다. 고도성장이 끝난 지금, 공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졌다. 대신 부모의 재력과 인맥을 통해 중산층이 세습되고 있다. 애초 기회의 차이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재능과 노력의 차이로 둔갑되고 있다.
프로그램이 까발리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본질은 탐식이다. 현주엽과 두 아들은 매번 9인분 정도의 고기를 먹어치운다. 거구의 운동선수와 성장기 소년들이니 잘 먹는 것이 당연하다. ‘먹방’이 유행인 시대에, 대식가 가족의 먹성은 콘텐츠가 된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했던가. 현주엽은 가족의 고기사랑을 돈을 불릴 아이디어에 연결시킨다. 어쩌면 이들의 식탐은 앞으로 사업기반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한참을 보다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식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죄악이거나 수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가치관에서 소비는 미덕이요, 욕망은 찬양된다. 오늘날 식탐은 능력이자 자랑이다. 더욱이 공장식 축산 없이는 불가능한 ‘고기 먹방’은 죄의식을 걷어낸 자본주의의 기름진 볼거리이다.
유명 방송인이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딴 서경석은 자기 계발의 아이콘으로 프로그램에 합류하였다. 전문성을 살려 거주편의 뿐 아니라, 투자성까지 짚어주는 그의 집 소개는 나름 유익하다. 그러나 더 눈에 띄는 것은 딱한 사연을 지닌 의뢰인을 위한 매물과 대비되는, 서경석과 윤민수의 대형 아파트다. 물론 이 모든 차이는 경제에 무지하여 돈을 모으지 못한 자와 경제 원리에 일찍 눈뜬 자의 차이로 수렴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신자유주의 세계관이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아이들에게 조기 경제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외침 역시 교육을 매개로 한 문화자본의 세습이다. 알량한 기부를 명목으로 자본주의식 ‘공정’을 화끈하게 노출하는 <자본주의학교>를 보다가, <피디수첩―부모 찬스! 논문 쓰는 고등학생들>(문화방송)을 보노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