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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재벌집 회장님’ 이성민 신들린 연기력, 뜻밖의 부작용 있다

등록 2022-12-15 07:00수정 2022-12-19 22:16

<재벌집 막내아들>(JTBC) 방송화면 갈무리.
<재벌집 막내아들>(JTBC) 방송화면 갈무리.

“내 무섭다. 와(왜) 와 내를 죽일라카는데 와아.”

자신을 죽이려고 한 배후를 듣고, 진양철(이성민) 회장이 내뱉은 이 한마디는 그의 막내 손자 진도준(송중기)과 함께 시청자의 마음도 후벼 팠다. 독사 같던 진 회장의 모습은 어디 가고 없고, 두려움 가득한 표정의 노쇠한 노인의 모습만 남았다. 진 회장은 정신적 충격에 손자도 못 알아보는 섬망 증상을 보이며 아픈 말을 내뱉었다. “(손자) 아이다 아이다 아이다. 절마(진도준)가 내를 주긴다카는 그 무서분 아이가?”

지난 11일 방송한 <재벌집 막내아들> 11회 마지막 장면은 시청자들이 진 회장한테 가진 양가의 감정 중 미움은 지우고 그를 인간적으로 애틋해 하는 마음만 남게 했다. 이 장면에서 진양철은 자식들에게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쓸쓸한 아버지, 수많은 사람이 따르지만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인간일 뿐이었다. 이날 방송은 자체 최고 시청률 전국 21.1%(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다. 진 회장의 몸 상태 변화로 12회부터 진흙탕 싸움이 될 후계다툼과 함께 이성민의 ‘신들린 연기력’을 재확인해준 명장면이었다.

&lt;재벌집 막내아들&gt;(JTBC)에서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역을 맡은 이성민. 방송화면 갈무리.
<재벌집 막내아들>(JTBC)에서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역을 맡은 이성민. 방송화면 갈무리.

현실 재벌-드라마 속 재벌 연결 재미

지난달 18일 시작한 <재벌집 막내아들>이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 윤현우(송중기)가 재벌집 막내 손자로 환생해 인생 2회차를 사는 일종의 ‘서민 판타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재벌집 손자가 된 ‘머슴’이 자신에게 변기 비데까지 설치하게 했던 ‘주인’을 쥐락펴락하며 그들을 ‘정의롭게 응징’하니 얼마나 속 시원하겠는가. 극 중 투자 전문가 오세현(박혁권)의 말처럼 “부자들이 골탕 먹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없는 얘기라서 극장으로 달려올 수밖에 없으니까.” 즉,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재벌 드라마는 많지만, 유독 <재벌집 막내아들>이 사랑받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드라마인데 사실성을 높여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 원작 웹소설을 집필한 산경 작가는 극중 순양그룹을 삼성 등 실제 재벌가를 모티브 삼았다고 밝혔다. 시청자들은 진양철 회장 일가를 보면서 현실의 누군가와 대입시키고, ‘저 황당한 에피소드는 팩트일까?’ 추측하며 진짜 재벌가 세상을 엿보는 것처럼 생각한다. 1987년 대선부터, 새서울타운(상암 디지털 미디어시티) 등 현실과 이어진 시대가 등장하고, 내가 진도준이 되어 일어날 일을 예측해 하나씩 헤쳐나가는 기분도 들게 한다.

&lt;재벌집 막내아들&gt;(JTBC) 방송화면 갈무리.
<재벌집 막내아들>(JTBC) 방송화면 갈무리.

그 재미, 사실감 완성은 이성민 신들린 연기력

결정적으로 <재벌집 막내아들>을 완성하는 것은 진양철 회장을 연기하는 이성민의 연기력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재벌집 막내아들>은 살해됐다가 회귀해 순양가 막내 손자로 살게 된 진도준의 복수극을 그리지만, 드라마의 힘은 진양철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에서 만들어졌다”며 “사실상 이 드라마에서 강력한 파괴력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이성민”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청률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1회 6.1%에서 시작한 시청률이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를 이어가며 8회 19.4%를 찍었지만, 진 회장 분량이 적었던 9회에서 16.9%로 갑자기 꺾였다.

이 드라마가 탄력을 받기 시작한 것도 차에서 내린 진양철 회장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기 시작한 1회 마지막 장면이자 2회부터다. 진 회장은 첫 등장부터 지금껏 줄곧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는 2회 회갑연 장면에서 첫 대사를 내뱉으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의 첫마디는 첫째 아들이 그를 위해 일본에서 요리사를 데려와 스시를 선보이는 장면에서 나온 세 글자였다.

“몇개고.”

스시 하나에 사용된 밥알을 묻는 말이다. 겨우 이 세 글자에서 진 회장은 공기를 바꿨고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순양전자가 일본한테는 뒤져도 국내에서는 1위라고 강조하는 아들한테 던진 “니 어디 전국체전 나가나” 같은 사소하게 보이는 대사에서도 다양한 감정들이 전해진다.

이성민은 사람을 쳐다볼 때 시선 처리나, 얼굴의 각도 등으로 진 회장이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얼굴을 살짝만 돌려 사람을 한심하게 내려다볼 때는 눈빛이 가로로 길어져 매서워 보이고, 손자를 보며 기분 좋아 활짝 웃을 때는 눈동자가 따뜻해진다. 정덕현 평론가는 “복수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걸 팽팽하게 만들어주고 이 허구에 현실감을 얹어주는 진양철이 살아야 드라마의 상승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lt;재벌집 막내아들&gt;(JTBC)에서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역을 맡은 이성민. 방송화면 갈무리.
<재벌집 막내아들>(JTBC)에서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역을 맡은 이성민. 방송화면 갈무리.

의상까지 실제 참고해 비슷하게 준비

진양철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성민은 경상도 사투리부터 외모까지 철저하게 준비해 이 회장과 비슷한 느낌을 냈고,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진양철 회장의 찰진 대사가 듣는 맛을 살린다. 이성민은 경상북도 영주 출신이고, 그곳 극단에서 연극을 한 것이 연기의 출발이다. 사투리는 물론, 진 회장 캐릭터에 맞게 목소리 톤을 조절했다고 한다.

특히 의상과 분위기도 비슷한 느낌을 내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 드라마 의상팀 관계자는 “진양철 회장의 의상은 삼성 창업주의 느낌을 참고했다”며 “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 영상 등에서 찾고 상상력을 더해서 제작했다”고 말했다. 진 회장 의상도 사실감을 더하려고 실제로 삼성가에서 의상을 많이 제작하는 곳에서 제작했다고 한다. 자녀들 옷은 진 회장을 중심으로 배역의 성격에 맞게 준비했을 뿐, 현실의 인물과는 상관없다고 한다. 극중 대영그룹 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을 모티브 삼았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8월 중순까지 촬영했다. 후반작업까지 생각하면 방송까지 약 1년이 걸렸다. 촬영 시간을 충분히 갖고 만듦새에 신경 쓸 수 있었던 것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lt;재벌집 막내아들&gt;(JTBC)에서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왼쪽·이성민)과 그의 손자 진도준(송중기). 방송화면 갈무리.
<재벌집 막내아들>(JTBC)에서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왼쪽·이성민)과 그의 손자 진도준(송중기). 방송화면 갈무리.

이성민 연기력에 캐릭터와 재벌가 악행도 가려지는 부작용…어쩌나

이성민의 신들린 연기에 뜻밖의 부작용도 얘기된다. 진양철 회장은 사실 인정사정없는 인물이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돈이 전부다. 회사를 인수할 때 고용승계란 있을 수 없다. “머슴을 키워가 등 따습고 배부르게 만들면 와 안 되는 줄 아나? 지가 주인인 줄 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따지고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나쁜 인물일 수 있다. 그런데 이성민의 연기력에 진 회장 캐릭터에 감정이입해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게다가 자녀들이 무능하게 그려지고 권력다툼이 강조되면서 아버지의 악행이 가려지는 효과가 나고 있다. 이성민의 연기력이 인간미를 세밀하게 살려, 진 회장은 일에 열정적인 인물로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순양그룹 신차 발표회 날 열린 레이스에서 대영그룹에 밀리자 초심을 찾으려고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차고에서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는데도 인명 사고가 없는 것을 두고 순양 자동차의 대단함을 홍보에 활용하려는 열정을 보인다. 작가가 진 회장을 현실의 인물을 모티브 삼았다고 밝히고, 그 인물이 했던 말이나 사례들이 드라마에도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실제 인물과 진 회장을 더욱 동일시한다. 시청자들은 진도준을 두고도 재벌가 실제 인물과 연결짓고 있다.

한 지상파 출신 프리랜서 피디(PD)는 “이 작품은 두가지 측면에서 할 말이 있다”며 “이성민의 연기력에 감탄했고, 실제로 재벌가의 사람들이 했던 말이나, 그 집안이나 그 집안사람들의 특징이 드라마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놀라웠다. 특히 진 회장은 이 드라마에서 상당히 멋진 인물처럼 느껴져 청소년들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인물과 드라마 속 인물을 동일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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