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1번지 4기 동인 페스티벌의 첫 작품인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의 출연 배우들. 왼쪽부터 백운철, 손진호, 김주령, 김태범. 연극의 무대는 4700여권의 책으로 빼곡한 헌책방 ‘오늘의 책’이다. 혜화동1번지 제공.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 페스티벌 첫 작품으로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4기 동인들의 첫 페스티벌 ‘대학로 콤플렉스’의 머리를 장식할 연극 제목이다. 연세대 국문과 출신의 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33)씨는 서울 신촌에 있다 사라진 인문사회과학 서점 ‘오늘의 책’을 무대에 되살려 놓는다. 4700여권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 빼곡한 헌책방 ‘오늘의 책’으로. 이 책들은 아직도 살아남아 고군분투하고 있는 고려대 앞 ‘장백서원’, 신촌의 헌책방 ‘숨어있는 책’, 대학로 ‘이음아트’ 등이 제공한 것이다. 책 운반비용이 수익금보다 더 들 수도 있지만 흔쾌히 응해주었다고 한다. 기형도 김소진 강경대 브레히트…
‘추억의 공간’ 사회과학서점서 더듬는
90년대 학생운동권 씁쓸한 후일담 공연이 끝난 뒤에는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직접 책을 판매할 예정이다. 온갖 말초적인 풍요에 둘러싸여 고사 위기에 처한 연극과 인문사회과학 서점의 동지적 연대라고 할까? 공연 포스터에는 이들 세 서점 주인들의 얼굴과 이름을 꼴라주 형식으로 싣고 약도를 넣었다. 연극은 이 추억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90년대 학생운동권의 후일담이다.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철학의 기초이론> <역사적 유물론> <정치경제학원론> 등 당대의 필독서들이 등장하고, ‘주사파’와 ‘피디’, ‘아이에스’로 갈라져 싸웠던 시절을 씁쓸하게 회고한다. 기형도와 김소진, 브레히트, 김귀정, 강경대 등 잊었던 이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80년대 선배들 눈에 우리는 학생운동 흉내내는 어설픈 후배”였다는 자괴감이 그 추억의 언저리를 떠돌고, “이제 고작 서른 넘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옛날 책들에 파묻혀서, 옛날 생각이나 하고 살겠다는 거냐”는 냉소가 겹쳐진다. “386세대의 후일담이 갖는 감상적인 자의식을 뛰어넘는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김재엽씨의 말마따나 ‘386이후 세대’가 풀어놓는 후일담은 어떤 색깔일지 궁금해진다. 위치상으로 ‘오프 대학로’라고 할 수 있는 혜화동 1번지 극장은 동인들이 직접 극장을 운영하며 자신들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가는 국내 유일의 동인제 집단이다. 올해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4기들의 첫 동인 페스티벌인 ‘대학로 콤플렉스’는 김재엽의 <오늘의 책…>(21일~4월2일)을 시작으로 두달 가까이 혜화동1번지 극장에서 펼쳐진다. 이어지는 작품은 강화정 작·연출 <죽지마, 나도 따라 아플꺼야>(4~16일), 김한길 작·연출 <임대아파트>(18~30일), 박정석 연출 <섬>(5월2~14일), 김혜영 작·연출 <살인자의 집>(5월16~28일), 우현종 연출 <질마와 솔래>(5월30일~6월11일). (02)3673-5575.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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