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 넷플릭스 제공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스타일리시하다” “할리우드 영화 짜깁기” “똥폼만 잡는 중2병 액션”
지난달 3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길복순>을 두고 시청자들의 찬반 논쟁이 뜨겁다. 극장 개봉작과 오티티(OTT) 영화를 막론하고 최근 나온 한국영화에 대해 의견과 주장이 활발하게 오가는 건 이례적이다.
전도연이 워킹맘 킬러로 나오는 <길복순>은 공개 2주차가 된 4월9일까지 넷플릭스 비영어 영화부문 글로벌 1위에 올라있다. 12일 국외 영화 평가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 를 보면 전문가 81%, 관객 83%로 좋은 점수를 유지 중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네이버 관객 평점은 6.97로, <웅남이>(7.73)보다 낮다.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2017) 이후 에스엔에스 발언 등을 통해 변성현 감독에게 생긴 일부 관객들의 반감, 또 스타일이 뚜렷한 변성현 감독 작품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반영된 결과다.
두 시간 동안 기본적인 긴장감조차 이어가지 못하는 한국영화들이 태반인데 비해 <길복순>이 몰입도가 강한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변성현 감독은 속된 말로 폼을 잘 잡는다. 이야기도, 화면도 그럴듯해 보이게 만든다. 상업영화 감독으로 큰 미덕”이라면서 “대중영화에서는 다소 앞뒤가 안 맞고 거칠어도 멋있게 보이는 것, 그럴듯하게 보이면서 쾌감을 주는 게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서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길복순>에서는 킬러 비즈니스라는 비현실적 설정과 이 안에서 워킹맘, 그리고 승진, 연봉 등 보통 회사원들의 고뇌 같은 현실적인 디테일들이 거슬리지 않게 엮이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불균질한 것들을 태연하게 뒤섞어버리는 변성현 감독의 연출 방식이다. 변 감독은 지난 6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초고에서 캐릭터 간의 관계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쓰다가 멈췄다. 보이는 정도로만 모호하게 가고 비주얼도 만화적인 것과 리얼함을 섞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좀 뻔뻔해야 연출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원더풀 고스트>, <조선마술사>를 연출한 조원희 감독은 “변성현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자신의 취향을 작품에 제대로 담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감독 중 하나”로 “매우 독특한 지점에 있는 감독”이라고 평한다. 그는 “상업영화판에서 영화를 만들다 보면 제작자나 관객, 극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작업하기가 쉽지 않은데 <길복순>의 경우 극장이 아닌 오티티에서 공개했기 때문에 감독이 빠지기 쉬운 자기 검열의 함정을 벗어나 더 강하게 변성현 스타일을 밀어붙였다”고 분석했다.
<길복순>의 미장센과 액션 연출 스타일에서 유독 찬반이 엇갈리는 것도 그가 <불한당> <킹메이커>(2022)같은 전작들보다 자신의 취향을 영화 안에 뚜렷이 녹였기 때문이다. 변성현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오십번 넘게 봤다. 액션과 비주얼 둘 다 이명세 감독한테 큰 영감을 받았다. 주성치의 <쿵푸허슬>을 너무 좋아해 오마주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식당에서의 대규모 싸움 장면에서 장면을 끊어가며 강렬한 타격감을 보여주는 대신 롱테이크를 밀어붙이고, 옛 동료의 머리에 칼 박히는 장면 등에서 그의 영화광적 면모가 촘촘히 드러난다. 이밖에도 시청자들은 <길복순>을 <킬 빌> <존 윅> <킹스맨> 등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와 연관 짓는다.
김도훈 영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한국적 리얼리티에 속박되지 않는 할리우드 키드 감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변 감독뿐 아니라 조성희 감독 등 비슷한 연배의 일부 감독들은 한국적인 인물이나 설정을 가져가기는 하지만 무국적성을 띈 할리우드 풍의 영화를 만든다. 이게 일부 한국 관객들에게는 리얼리티를 벗어나는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짚었다. 그는 “<길복순>을 통해 변 감독은 영화광으로 비슷한 영화적 성장 배경을 가진 또래 젊은 감독들 가운데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앞으로의 행보가 가장 주목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영화적 레퍼런스가 담긴 <길복순>의 스타일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영향을 준 영화들을 노골적으로 인용하면서도 하나의 완결된 스타일을 구축한 타란티노에 비해서는 아직 일관성이 부족하고 허술하다는 지적도 많다. 이야기 전개 방식 역시 젊은 감독의 패기가 미숙함을 가린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영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 넷플릭스 제공
20년 넘게 충무로 상업영화계에서 영화를 만들어온 한 제작자는 “화면을 채우는 감각이나 스타일의 강점이 있지만 관계의 복잡성, 성소수자 소재 등 많은 것들을 얇게 건드리기만 한다는 면에서 <길복순>이 지금의 한국 영화계에 얼마나 유의미한 콘텐츠인지 의문”이라면서 “변 감독은 개성과 역량이 있는 감독이지만 연출자로서의 성취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단계”라고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