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새로 발견한 ‘사랑’
소설가 박범신(60)씨가 산문집 <비우니 향기롭다>(랜덤하우스중앙)를 새로 펴냈다. 히말라야 산협을 70여 일 동안 걸으면서 쓴 편지 형식의 글들이다. 박씨가 히말라야로 향한 것은 지난해 봄. <한겨레>에 2004년 1년 간 소설 <나마스테>를 연재한 뒤였다. 그는 물론 이전에도 히말라야를 각별히 좋아해서 여러 번 다녀 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특별했으니, <나마스테>의 주인공인 ‘카밀’의 고향 마르파가 그곳에 있었던 까닭이다. ‘히말라야 여행에서 만나 본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마르파는 “사과꽃 향기가 천지를 가득 채우고 그 사이로 붕붕거리는 바람 소리가 지나가”는 마을이다. 카밀의 고향 마르파에 들른 그는 “작가로서 그(=카밀)를 서울로 데려가 마침내 죽게 만든 죄업을 가슴 저리게 생각하면서, 독한 애플브랜디로 카밀의 혼백을” 달랜다. 히말라야에서 그가 카밀과 마르파만 만난 것은 아니다. 그를 그곳으로 등 떠민 “내 가슴 속 폐허”를 만나고,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묵음의 언어”를 만나며, 적게 누리며 크게 행복해하는 그곳 사람들의 지혜를 만나고, 상상 속의 설인(雪人) ‘예티’를 만난다. 하루치의 걷기를 마치고 저물녘 숙소에 도착했을 때, 만년설 봉우리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붉게 물드는 장관을 지켜보며 그는 다만 눈물을 흘릴 따름이다. 그럴 때만이 아니라 히말라야에서의 순간순간이 눈물겨웠노라고 그는 쓴다. “때로 나의 존재가 너무도 가벼워 눈물겨웠고, 때론 죽을 둥 살 둥 달려온 내 젊은 날의 초상이 너무도 안쓰러워 눈물겨웠고, 때론 동강난 땅에 살면서 그래도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겠다는 장한 꿈을 좇아 오늘도 다리가 찢어져라 내달리고 있는 내 조국에 대한 연민 때문에 눈물겨웠습니다.” 고행과도 같은 걷기를 마치고 내려와서 그가 새삼 발견하는 것은 다시 ‘사랑’이다. “사랑은 나의 명줄과 같았습니다. 싸움도 사랑 때문에 했고, 욕망의 모든 비명도 사랑 때문에 내지른 것이었는데, 그러나 살아온 지난 날의 대부분, 나의 사랑은 사랑이었다기보다 사랑의 습관이었으며, 사랑의 습관이라기보다 사랑의 ‘모방’에 불과했습니다.” 어느새 회갑을 맞은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씨가 히말라야에서 새롭게 발견한 사랑의 가치를 어떻게 소설적으로 승화시킬지 주목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