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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위안부 소설 낸 고혜정 전 정신대연구소장

등록 2006-04-02 17:39

날마다 죽은 ‘딸들의 삶’ 상처 보듬는 ‘한풀이 굿’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을 지낸 고혜정씨가 일본군 위안부의 삶을 소재로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소명출판)는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고씨의 문단 데뷔작이기도 하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일을 시작한 고씨는 93년부터 10년간 국내외 위안부 피해자 수십 명을 찾아낸 현장활동가 출신이다. 중국에 사는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내 15차례 이상 방문하면서 증언집, 사진집,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만들기도 했다.

“10년 동안 국내외에서 대략 50~60분의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난 것 같아요. 그분들의 삶에 누가 될까봐 차마 증언집에 남기지 못한 행간의 진실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할머니들의 입에서 태어났다. 오래 만나 겨우 마음의 문을 연 할머니들은 녹음기를 치우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 남의 얘기나 되는 양 무심하게 옛 상처를 들려주곤 했다. 10년 동안 할머니들의 말문을 틔워온 일이 치유의 시작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그들과 고씨 자신의 해원굿이라 할 만하다.

이야기는 일제시대 한 빈농의 딸 오마당순이의 삶을 따라간다. 총명한 마당순이는 아버지의 반대로 학교에 가지 못한 채 남의 집살이를 전전한다. 16살 되던 해 남태평양 한 섬의 위안소로 끌려간 그는 매일 수십명의 남자들을 상대하는 생지옥을 겪게 된다.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아랫도리가 된 곳, 여자가 아니라 노예가 된 곳”(197쪽)에서 그는 “나의 육신은 밤이면 매일 죽었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면 나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태어났다”(240쪽)고 읊조린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에서 재구성한 일화들은 치밀하고 성성하다. 마당순이와 사랑을 나누게 된 일본 군인이 어렸을 때 부잣집에 양자로 들어간 친오빠였다는 충격적인 설정 역시 실제 증언에서 빌려왔다. 섬에서 섬으로 옮겨다니며 ‘원정 위안’을 다니는 위안부들, 악세사리를 팔며 돈을 갈취하는 위안소 주인, 위안소 앞에서 줄을 서서 자위행위를 하는 군인들의 모습 등도 실화에 상상력을 덧입힌 부분이다.

작가는 반일감정을 건드려 독자의 공감을 얻으려는 얕은 수를 피해간다. 잔혹한 성착취 범죄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만도 않는다. 식민지 피지배계층의 맨 밑바닥에서 태어나 온 생애 동안 제국주의와 가부장에 착취만 당하면서 살아가는 마당순이는 끝내 나무에 목각인형을 매달며 군인과 동료의 영혼을 치유하는 여신으로 거듭난다. 기적적으로 생존해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한 실제 피해생존자들에게서 발견한 모습이기도 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나 생명력 넘치는 분들이신데요. 낙천적이고, 재미있으세요.” 고씨는 “이 소설은 상처받은 모든 여성의 이야기”라며 “그들이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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