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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변죽 울려 복판을 때린 ‘예술판 복서’

등록 2006-05-22 18:19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변방 축제’ 구상
비제도권 젊은 예술가 해방구로 키워
“비판만 말고 정책 설계 해보란 거겠죠”
지난달 출범 예술경영지원센터 이규석 센터장

지난해까지만 해도 청년 이규석(35)은 ‘변방의 북소리’였다. ‘힘없고 빽없는’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 축제인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집행위원장, 이게 그의 명함이었다. 그가 지난달 공식 출범한 문화관광부 산하단체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센터장에 임명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저항세력의 본격적인 제도권 진입 혹은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라고 할까?

“비판만 하지 말고 네가 직접 해보라는 거겠죠. 이제 비판을 들어야 하는 정책 설계자가 되고 나니 무척 긴장됩니다. 공부나 고민도 더 많이 하게 되고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인 시인 황지우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경량급 권투선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깡마른 체구를 갖고 있다. 말은 빠르고 논리적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반 활동을 시작했는데, 〈불 좀 꺼주세요〉 〈피고지고 피고지고〉의 희곡작가 이만희가 담임이자 지도교사였다. 대학(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가서도 대학 연극반에 들어가지 않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합동아리를 만들어 활동을 계속했다. 물론, 월급쟁이 생활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만들게 된 것은 기성 예술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힘을 얻지 않고는 극장 하나 빌리기 어려운 풍토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답답함을 뚫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1998년 처음 시작했으니, 내년이면 10회째다.

“해방구 혹은 발전소라고 할까요. 소수의 선택된 예술가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권에 굳이 들어가려고 선망하지 말고 우리가 판을 만들자고 했죠. 우리끼리 모여 발표 기회를 만들고 서로를 예술가 대접해주자는 거였어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모으니 미술, 음악, 연극, 무용, 영화 등 거의 모든 예술 분야를 망라하는 폭넓은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문제는 축제의 판을 기획하고 운영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구실을 이씨가 맡게 됐고, 연출가의 꿈은 접어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행사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던 기성 예술계도, 우리가 꿋꿋이 해나가자 서서히 사후 승인을 해주는 형국이었다”고 회고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제 발로 찾아오는 젊은 예술가들이 많아졌고, 2001년에는 아시아의 비슷한 단체들과 교류의 폭을 넓혔다. 지금은 ‘변방 축제’ 중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2005년에는 308개 단체가 참가했으며, 행사가 열리는 홍대 앞을 찾은 관객 수는 17만명에 이르렀다. 록밴드 크라잉 넛, 영화감독 류승완, 극단 노뜰과 드림플레이 등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문화관광부가 만든 임시조직이었던 서울아트마켓 사무국과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산하의 전문예술법인·단체평가센터를 통합해 만든 민간 재단법인이다. 주요 업무는 우리 공연예술의 국외 진출을 비롯한 국제교류를 돕고, 국고가 지원되는 예술사업을 평가하는 것이다. “공급 쪽에서 보자면 1500개 이상의 공연예술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유통 쪽에서는 550개 이상의 공연장과 공연예술센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공급·유통망이 관객들과 적절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외 진출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연간 발표되는 작품이 7500편 가량인데, 이 중 외국에 소개되는 작품은 2.4%에 불과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할 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행정과 현장의 다리 구실 아닐까요? 예술현장의 세대교체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생물학적인 의미의 세대교체를 넘어서, 실제로 의미있는 변화를 끌어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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