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취득’ 악용 도굴꾼 기승
도난품 드러나도 반환 막막…공소시효 고작 7년
“문화재, 일반 재화와 달라…예외 적용을” 제안
도난품 드러나도 반환 막막…공소시효 고작 7년
“문화재, 일반 재화와 달라…예외 적용을” 제안
문화재 도난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도굴꾼 출신의 ㅅ아무개(45)씨는 “주인 잃은 문화재들은 몇년만 기다리면 세상에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1년 검거됐을 당시 갖가지 수법으로 보물급 문화재 등 35점(15억여원어치)을 훔쳐 ‘희대의 도굴꾼’으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는 “훔친 문화재를 중간상에게 팔면 이들이 맡아두고 있다가 공소시효(7년)가 끝날 때쯤 시중에 내놓아 개인 수집가나 박물관 등으로 흘러들어간다”며 “특히 사설 박물관들은 이런 식으로 수집을 많이 한다”고 증언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박물관은 도난·도굴 문화재가 유통되는 먹이사슬 구조의 정점에 있는 셈이다. 문화재 전문가들도 “박물관들이 ‘장물인 줄 몰랐다’며 ‘선의취득’을 주장하는 것은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장물을 산 사람이 훔친 물건인 줄 알고 샀다면 형법상 장물취득죄에 해당하지만, 정상적인 물건으로 믿고 합당한 가격에 샀다면 민법 제249조에 근거해 ‘선의취득’으로 소유권을 인정받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4년 10월 일본 효고현 가쿠린지에서 감정가 10억원대의 고려 불화 〈아미타삼존상〉 등을 훔쳐 국내로 반입한 사건이다. 도굴꾼 일당이 붙잡힌 뒤 검찰은 불화의 최종 구매자로 대구의 한 암자를 지목했으나 “신도한테서 시주받아 도난품인 줄 몰랐으며 이후 다시 도난당해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암자 쪽의 말에 수사를 종결했다. 사실상 선의취득을 인정한 것이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정우택 교수는 “당시 ‘일본에 있던 고려 불화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식의 왜곡된 민족 감정이 일면서 선의취득을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문화재가 다시 국외로 밀반출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며 “이 사건 이후 문화재의 선의취득이 매우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선의취득을 폭넓게 적용하면 본래 주인은 문화재를 영영 찾지 못하고 도난·도굴품의 유통을 합법화하는 결과를 초래해 도굴꾼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지난 4월 경매에 나왔다가 도난품인 사실이 드러난 전남 순천 선암사의 〈팔상도〉 역시 선의취득에 걸려 주인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선암사는 〈팔상도〉를 경매에 부친 윤아무개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은닉죄) 혐의로 고발했지만 아직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은닉죄가 성립하려면 장물을 취득했다는 사실부터 입증해야 하는데, 윤씨는 선의취득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에 선암사는 반환청구소송을 추가로 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신의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경영국장은 “민사상 선의취득을 인정하는 것은 재화의 유통을 촉진하거나 거래를 원활하게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데, 문화재는 그 성질이 일반 재화와 다르다”며 “모든 문화재에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일단 지정 문화재만이라도 선의취득을 인정하지 않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유주현 전진식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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