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한겨레원형질] 민족문화상징 100 ②

등록 2006-08-04 14:47수정 2006-08-04 15:07

[한겨레원형질] 민족문화상징 100
[한겨레원형질] 민족문화상징 100

■ 오천년 역사 지탱한 한반도 등뼈 : 백두대간과 백두산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불과 14개월 동안 한반도를 둘러보고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 산맥 분류법을 제시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산맥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지질학적 발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백두대간 되찾기’는 국토에 가해진 모멸을 벗겨내는 과거사 청산작업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은 조선 후기에 신경준의 〈산경표〉 등에 집약되지만 기실 한 개인의 창조물이 아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형성된 전통적 산맥 개념이 백두대간으로 압축되었다. 두말할 것 없이 한반도의 등뼈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려 낭림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을 거쳐 태백산에 이르고, 남서로 방향을 틀어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그리고 지리산에 산맥을 드리운다. 백두대간이 강역 상징의 으뜸일 수밖에 없음은 자연과 인간, 역사와 삶의 드넓은 폭과 깊이를 두루 껴안고 있기 때문이리라.

등뼈의 정수리에는 천지를 품은 백두산이 좌정한다. 최남선은 ‘백두산 근참기’에서 이르길, ‘조선 인문의 창건자는 실로 이 백두산으로써 그 최초의 무대를 삼아서, 이른바 홍익인간의 희막(戱幕)을 개시하고, 그 극장을 이름하되 신시라 하였다. 단군의 탄강지요 조선국의 출발점이다’라고 하였다. 안재홍도 ‘백두산등척기’에서 ‘통철무애의 신비경’을 노래하며 대백두를 성모산 중의 성모산으로 보았다. 신화가 창조된 공간으로서 한민족이란 관념의 형성과 전승에 절대적인 구실을 하였으니 백두산의 상징 층위는 고대적·신화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함부로 다뤄 백두대간 곳곳 상처
중국은 백두산공정으로 위협
한반도 등뼈가 휘청거리고 있다

백두대간과 백두산 따위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올해 강원도를 휩쓴 엄청난 큰물 피해는 등뼈의 가지들을 함부로 다룬 죗값이다. 생태환경운동의 맥락에서 백두대간 지키기 등이 이따금 벌어지고는 있으나 곳곳의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어긋난 상태이다.

백두산은 안전한가. 중국은 바야흐로 대대적인 창바이(백두산) 개발에 나서며 영유권 선점을 위하여 세계지질공원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동북공정의 폭과 넓이가 발해공정·백두산공정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창바이인삼’을 상표화해 세계무대에서 고려인삼과 판갈이 싸움을 예고하고 있어 조만간 인삼조차도 원조 다툼이 가시화될 것이다.

이러한 마당에 탈민족 담론의 불씨를 지피려는 안간힘도 강하게 불고 있으니 한반도의 등뼈가 휘청거린다. 민족관념의 과잉이 가져올 후과를 걱정하면서도, 간도의 해결되지 않은 옛땅과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도 비록 민족상징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들추지 않을 수 없으리라. 주강현 한국민속연구소장


■ 동해표기·독도영유권… 도전받는 미래의 평화 : 금강산 · 동해 · 독도 · 대동여지도 · 무궁화 · 태극기

신의 손길은 위대한 산을 만들어 내고, 인간은 문화를 만들어 낸다. 금강산이 바로 그것이다. 제대로 된 작품 하나쯤은 만들어 두고 싶었던가, 신은 기어이 금강산을 빚어냈다. 진경산수의 겸재 정선을 비롯하여 ‘금강산 마니아’ 양사언 등 시인묵객들이 가히 ‘금강산학’이라 부를 만한 그 무엇을 탄생시켰다.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에서 금강산은 필수 순례지다. 신라의 화랑 영랑을 비롯하여 21세기 순례객에 이르기까지 장기 지속성과 보편성·통속성·예술성 등을 두루 갖춘 민족의 명산이 아닐까. 온갖 철학적 명상으로부터 일만이천봉 골골마다 끊이지 않던 절집 풍경소리, 그리고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노래하는 ‘나무꾼과 선녀’에 이르기까지 ‘금강산학’의 문화사적 계보는 그야말로 방방곡곡에 진지전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민족의 문화상징은 방방곡곡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진진포포(津津浦浦) 바다로도 나아가야 한다. 서해, 남해, 동해 삼면이 바다인데 그 중에서도 동해가 눈길을 끈다. 문무대왕이 동해용왕이 되어 왜구를 막는 수호신이 되겠다고 비장한 유언을 남겼던 동해에는 오늘날에도 ‘신왜구’의 준동이 심상찮다. 세계지도 표기의 90% 이상은 동해(East Sea)보다 일본해(Sea of Japan)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불러왔는데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란다. 한국인끼리야 당연히 동해라고 부르지만 어디까지나 ‘국내용’일 뿐 국제사회에서는 다르다. 1929년에 열린 국제수로기구(IHO)에서 처음으로 바다 명칭을 공식화할 때, 식민지로서 자신의 견해를 펼 수 없는 조건이어서 일본해가 국제적 공인을 얻게 된다. 즉, 1929년에 발간된 〈해양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에 일본해로 등재된 데서 사달이 발생하였다. 몇십쪽에 불과한 얇은 책자가 동해의 장래 운명을 바꾸어버린 것.

목각의 깊이 · 나이테의내력 사라질까
충성과 맹세에서 해방된 태극기 물결

독도에 관해서는 상세한 설명이 불요하리라. 다만,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대항해를 해본 적이 있는데 정말 실감나는 대목이 하나 있으니 그 넓은 동해에서 마주친 유일한 섬은 독도와 울릉도뿐이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독도는 동해의 화점(花點) 같은, 신이 내린 황금의 섬이다.

백두산으로부터 동해, 독도에 이르기까지 ‘백두산 공정’으로, 동해 표기 문제로, 독도 영유권 문제로 이래저래 사달이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하여 불행한 일이다. 오늘의 한반도 강역의 안전망이 도전받고 있다는 증거이니, 태곳적부터 우리 것이 확실한 강역 자체를 브랜드로 만들기까지 해야 하는 문화사적 과제가 21세기 국제사회의 현실로 도출된 셈이다.

이러한 강역의 상징을 절절하게 묘사한 거작이 있으니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이다. 그의 손길로 우리 강토가 비로소 온전하게 드러났다. 지도 이해는 바로 근대국가의 영토적 관념의 형성과 밀접하다. 21세기 고산자의 후예들은 전자문화지도 같은 첨단 지도로 무장하고 위성통신을 이용한 3차원 지도를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대동여지도의 목각판이 전해주는 나이테의 내력과 목각의 깊이, 칼날의 각인 등이 사라질 이유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디지털이 편리하다고 해서 아날로그 지도를 창고에 처넣을 것인가.

오른쪽 위부터 야생화와 어우러진 백두산 천지의 여름, 하늘을 찌를 듯한 금강산 만물상, 쪽빛 하늘을 닮은 동해, 한반도의 막내 독도 전경,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자태를 뽐내는 무궁화,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 중국의 태극도형보다 4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알려진 경주 감은사 금당 동남쪽 기단 장대석의 태극문양.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문화재청 제공
오른쪽 위부터 야생화와 어우러진 백두산 천지의 여름, 하늘을 찌를 듯한 금강산 만물상, 쪽빛 하늘을 닮은 동해, 한반도의 막내 독도 전경,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자태를 뽐내는 무궁화,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 중국의 태극도형보다 4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알려진 경주 감은사 금당 동남쪽 기단 장대석의 태극문양.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문화재청 제공
민족상징의 꽃은 역시 무궁화다. 무궁화가 아름답지 않다는 비판과 자조도 심하다. 그러나 한반도를 일찍이 근역이라 불렀음을 고려한다면, 함부로 꽃을 꺾을 일이 못된다. 중국 산해경에서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고 하였다. 적어도 수천년 전에 무궁화가 한반도에 피고 지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분명한 것 하나가 있으니, 무궁화의 상징화는 아무래도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과 밀접한 것이니 애국가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류가 그것이다.

태극기도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충성을’ 다 바쳐야 하는, 일제의 황국신민서사 같은 군국주의·국가주의형 틀은 깃발을 내려야 할 것이다. 국기와 국민, 충성과 맹세, 그러한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월드컵 길거리응원에서 태극기가 엄숙과 권위로부터 일탈 내지는 해방되면서 비로소 태극기가 온전하게 되돌아오는 중이다. 태극도설의 철학적 근거에서부터 다양한 태극 도상들이 함의하는 디자인의 다양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손길이 미쳐야 하리라. 논의 과정에서 누락되기는 하였으나, 분단된 상황에서 태극기와 인공기 사이에 있는 ‘한반도기’가 지니는 중간자·과도기적 존재가치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주강현 (*후원 : 대한항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