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시로 놀아본 ‘한강 문학 나눔 큰잔치’
이 기쁨을 이 아픔을
“처음엔 이렇게 썼다./다 잊으니까 꽃도 핀다./다 잊으니까, 강물도 저렇게/천천히 흐른다./틀렸다, 이제 다시 쓴다./아무것도 못 잊으니까 꽃도 핀다./아무것도 못 잊으니까,/강물도 저렇게/시퍼렇게 흐른다.”(윤제림 <강가에서> 전문)
강물에 비친 사랑의 빛깔
24일 저녁 8시 10분께. 한강 원효대교 아래 둔치와 강물 속 교각 사이에 마련된 무대에 열댓 명의 배우와 무용가, 마임이스트, 시인들이 올랐다. 여는 시 <강가에서>에 이어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 김춘수의 <꽃> 등이 울려 퍼졌다. 한 사람이 자신만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시를 연기하면 다른 출연자들은 허밍을 곁들이거나 무대 위를 자유롭게 오가며 시를 ‘놀았다.’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도정일)가 마련한 ‘2006 한강 문학 나눔 큰잔치’의 주제공연 ‘강에게’(연출 김아라)였다. 사랑을 노래한 시 30편이 음악과 연기, 몸짓(마임), 노래가 어우러진 복합음악장르극으로 옮겨졌다.
여름의 끝자락에 놓인 한강의 이른 밤. 바람은 맞춤하게 살랑대고, 물결은 아늑하게 출렁였으며, 피아노와 첼로, 해금이 들려주는 음악은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 도심의 강물에 비친 색색의 불빛은 설렘과 환희, 상심과 고통, 치유와 안정 등 사랑의 여러 빛깔처럼 보였다.
한동안 요란하다 싶을 정도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된다. 낮고 우울한 첼로 연주를 배경 삼아 고정희 시 <오늘 같은 날>이 춤과 노래와 낭송으로 옮겨지자 700여 명의 관객들 역시 저마다의 사랑의 추억 속에 잠겨드는 듯했다. 피아노 반주에 곁들여 시나위 풍으로 읊는 기형도 시 <빈집>에 이어지는 다음 차례는 문정희 시 <목숨의 노래>였다. 낭송자는 시인 김이듬씨. 검은 치마에 녹색 웃옷을 입은 김씨는 멀리 강물 속 교각에 기대 서서 그야말로 목숨을 부르듯 절규했다.
“너 처음 만났을 때/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죽고 싶었다”(문정희 <목숨의 노래> 전문)
강물로 뛰어들어 시낭송 몸짓 무용가 박호빈씨는 무대에서 강물로 뛰어들어 한 가닥 밧줄에 의지한 채 전체 5연 18행인 나희덕 시 <푸른 밤>을 낭송하며 둔치 쪽으로 헤엄쳐 왔다. 함민복 시 <선천성 그리움>을 낭송한 무용가 최수진씨는 “내리치는 번개여”라는 마지막 구절과 함께, 번개에 맞은 듯, 무대에 쓰러졌다. 몸을 던져 시를 보여주는 출연진을 향해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다. 안도현 시 <저물 무렵>으로 주제공연이 모두 끝났지만, 잔치는 끝난 게 아니었다. 일행은 둔치 위의 원효대교 아래 마련된 북카페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설치미술 퍼포먼스와 즉흥시 난장으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객석에 있던 건축가 곽재환씨가 졸지에 불려나와 함형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을 멋지게 암송했다. 해금주자 김준희의 <섬집 아기> 연주에 맞춘 시인 도종환씨의 <당신은 누구십니까> 낭송, 신달자·박후기씨 등의 자작시 낭송과 김근 시인의 자작시 <강, 꿈>의 퍼포먼스 낭송이 이어졌다. 철없는 폭주족들이 이따금씩 행사장 주변을 요란한 폭음을 내며 지나갔지만, 잔치는 한강 교각에 빔을 쏘는 최종범씨의 영상 퍼포먼스로 이어지며 자정 즈음까지 계속됐다. 한강이 시와 사랑의 이름으로 흐른 밤이었다. 사흘 간 계속되는 ‘한강 문학 나눔 큰잔치’의 26일 행사에 앞서서는 오후 5시부터 인터넷 라디오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이 열려 시인 이문재·신달자·도종환씨와 소설가 윤대녕씨가 출연한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양은숙씨는 멋과 맛이 넘치는 ‘푸드스타일 전시’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4일 서울 여의도 원효대교 아래 둔치에서 연 2006 한강 문학나눔 큰잔치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엮어 만든 복합 음악 장르극 공연인〈강에게〉를 선보이고 있다. 이종찬기자 rhee@hani.co.kr
강물로 뛰어들어 시낭송 몸짓 무용가 박호빈씨는 무대에서 강물로 뛰어들어 한 가닥 밧줄에 의지한 채 전체 5연 18행인 나희덕 시 <푸른 밤>을 낭송하며 둔치 쪽으로 헤엄쳐 왔다. 함민복 시 <선천성 그리움>을 낭송한 무용가 최수진씨는 “내리치는 번개여”라는 마지막 구절과 함께, 번개에 맞은 듯, 무대에 쓰러졌다. 몸을 던져 시를 보여주는 출연진을 향해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다. 안도현 시 <저물 무렵>으로 주제공연이 모두 끝났지만, 잔치는 끝난 게 아니었다. 일행은 둔치 위의 원효대교 아래 마련된 북카페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설치미술 퍼포먼스와 즉흥시 난장으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객석에 있던 건축가 곽재환씨가 졸지에 불려나와 함형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을 멋지게 암송했다. 해금주자 김준희의 <섬집 아기> 연주에 맞춘 시인 도종환씨의 <당신은 누구십니까> 낭송, 신달자·박후기씨 등의 자작시 낭송과 김근 시인의 자작시 <강, 꿈>의 퍼포먼스 낭송이 이어졌다. 철없는 폭주족들이 이따금씩 행사장 주변을 요란한 폭음을 내며 지나갔지만, 잔치는 한강 교각에 빔을 쏘는 최종범씨의 영상 퍼포먼스로 이어지며 자정 즈음까지 계속됐다. 한강이 시와 사랑의 이름으로 흐른 밤이었다. 사흘 간 계속되는 ‘한강 문학 나눔 큰잔치’의 26일 행사에 앞서서는 오후 5시부터 인터넷 라디오 <문장의 소리> 공개방송이 열려 시인 이문재·신달자·도종환씨와 소설가 윤대녕씨가 출연한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양은숙씨는 멋과 맛이 넘치는 ‘푸드스타일 전시’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