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2월18일 도쿄에서 열린 집회 ‘일한조약(한일협정) 10년의 역사를 역전시키기 위래 우리는 생각한다’에 패널 토론자로 참석했다. 오른쪽부터 아오치 신, 무토 이치요, 그리고 필자.
와다 하루키 회고록-내가 만난 한반도/⑫ <창작과 비평>에 빠져들다 1976년에도 민주구국선언이 발표되자 큰 반향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재일한국인 청년이 100만인 지지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일한연대연락회의는 1977년 들어 다시 김대중사건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국회에 조사위원회를 만들도록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우쓰노미야 도쿠마 의원, 사회당, 신자유클럼, 공산당, 공명당 등의 지지속에 활동했다. 1977년에 우리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한국의 많은 다양한 지식인들과 알게 됐다. 한국어를 조금 읽을 수 있게 되자 자연히 도쿄에 있는 삼중당이나 고려서점 등을 찾아가 한국서적을 살펴보게 됐다. 내가 최초로 주목한 것은 두 개의 잡지였다. 하나가 <월간 대화>, 또 하나가 계간 <창작과 비평>이었다. <월간 대화>는 그 화려한 표지로 내 눈을 빼앗았다. 한국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기관지를 증면 혁신해서 ‘오늘의 역사와 사회를 투시하는 사회문화종합지’를 지향하겠다며, 새 편집장에 임정남씨를 앉혔다. 그 혁신 첫호 1976년 11월호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룡 아카데미 원장의 대담 ‘이 민족에 희망을’, 시인 고은의 평론 ‘역사와 지식인’, 최옥자 논문 ‘한국 여성운동을 반성한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석정남의 수기 ‘인간답게 살고 싶다’가 실렸다. 석정남의 수기 에피그램에는 마루야마 가오루의 시 <어머니의 우산>이 인용돼 있어 흥미를 끌었다. 12월호에는 법정 스님의 연재 칼럼 첫회 ‘출가’, ‘미공개 발굴자료 일본저항수기 <역사속의 아픈 목소리들>’ 등이 실렸다. 한국에서 이런 잡지가 나왔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이 두 책을 사서 먼저 법정 스님의 ‘출가’를 읽었다.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노력은 개인이든 조직체든 다를 바 없다. …권력도 조직도 없는 개인이 자기 환경을 개조하거나 재구성하려면 그는 자기 한계를 알기 때문에, …몸소 버리고 떠난다. …출가란 이와 같이 버리고 떠남이다. 묵은 집, 집착의 집, 갈등의 집에서 떠났다고 해서 출가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럼 너는 어째서 출가했느냐? 부처가 지금 이 자리에서 묻는다 할지라도 나는 다음 같이 대답할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내 식대로 살기 위해서 집을 떠났다라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남으로써 오히려 홀가분한 자유를 누리려는 것이다.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가기 위해.” 나는 깊이 감동했다. 한국의 지식인이 이런 높은 정신성을 일본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잡지의 논문을 골라내 소개하는 책을 낼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이 내 마음 속에서 싹텄다. 77년 4월호에는 성래운의 ‘인류와 함께 동포가 살아가는 길’이 실렸다. 8월호에는 리영희의 ‘광복 32주년의 반성 ’이 실렸다. 이들 논문은 나로서도 읽을 만했다. 문장이 알기 쉽고 사상이 명석했다. 리영희씨는 일본인이 망언을 되풀이하는 것의 “근원적인 책임과 잘못이 과연 일본인들에게만 있는 것일까? 일본인들이 져야 할 책임에 못지 않은 양의 잘못이 우리 자신에게는 없는 것일까?”, 망언이 되풀이되는 것은 “그것을 허용하는 근거가 이 민족, 사회, 국가 내부에 존재해 있는 탓도 있다고 생각된다”라고 지적했다. 그것은 일한관계를 논하는 방식을 근저에서 바꾸도록 주장한 획기적인 논문이었다.
〈창작과 비평〉1977년 가을호.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 바로잡습니다
지난호 연재에서, 민청학련사건 당시 뿌려졌던 <민중의 소리>의 원작자가 조영래 변호사라고 기술돼 있는 것과 관련해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 김학민 사무처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다음과 같이 알려왔습니다. “<민중의 소리>는 1973년 말부터 수배생활을 하고 있던 장기표씨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얻어 준 방에 숨어 있으면서 작성하였다. 장기표씨는 <민중의 소리>를 완성한 뒤, 이를 1974년 3월 말 당시 서울대 상대에 재학중이던 김병곤씨에게 주어 민청학련 시위 때 살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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