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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트로트 자작곡 여가수 혜성 같은 등장

등록 2006-11-19 19:29수정 2007-04-17 11:47

[한국팝의 사건·사고 60년](75)심수봉과 ‘그때 그사람’
트로트를 ‘예술’이라 부르기 꺼림칙하다면, 가장 중요한 이유는 트로트 가수 대부분이 그냥 가수이지 ‘작가’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트로트 가수들은 작사가나 작곡가가 ‘주는’ 곡을 ‘받아’ 부르는 존재인데, 이런 분업관계가 확고하면 그 장르는 예술로 대접받기 힘들다. 이는 일종의 성별 분업이기도 하다. 트로트를 포함한 재래가요의 경우 여성가수의 비중은 남자가수를 압도했지만, 작사가나 작곡가의 경우 여성의 비중은 크지 않다. 결국 트로트계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란 불가능한 범주같다.

이런 상황에서 심수봉의 탄생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포크송이나 그룹사운드가 중심이던 1978년 엠비시 대학가요제에 본명(심민경)으로 출전,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아이보리색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그때 그 사람>이라는 ‘자작곡 트로트’를 부르던 모습은 하나의 비경(秘經)이었다. 그녀는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혹은 그럴 수 없었지만), 대학가요제에 함께 출전한 최현군과 스플릿 앨범(2인1조 음반)을 발표하면서, 신비감과는 거리가 멀었던 여느 트로트 가수와는 상이한 길을 걸었다. 쥐어짜며 절창하는 트로트의 관행과 달리 그녀는 힘을 주지 않고 비음 섞여 한들거리는 독특한 창법을 가지고 있었다. ‘통속적’인 가사도 그녀의 목소리를 거치면 ‘통속적인 것이야말로 절박한 것’이라는 명제를 마법적으로 확립시켰다.

10·26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그녀는 한동안 방송출연을 정지당했다. 1983년 드라마 주제곡으로 작사·작곡한 <순자의 가을>도 ‘순자’라는 이름 때문에 금지되어, 나중에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로 곡명을 바꾸고 가수를 방미로 교체한 뒤에야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꽤나 길었던 수난기가 그녀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의 절절함을 더했을 듯하다.

방송정지가 풀린 1984년 이후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다시 한 번 절절함을 전했지만, 방송사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이 곡을 찾기는 힘들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1980년대 내내 ‘비자발적 언더그라운드’였던 셈. 그러나 <무궁화>(1985), <사랑밖에 난 몰라>(1986), <미워요>(1988)에서 만개한 심수봉의 노래를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었다. 방송이나 음반과는 별도로 그 수요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여러 공적 공간에서 감정을 가득 실어 심수봉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찾기 어렵지 않다. 심수봉의 트로트는 대학생이나 지식인은 물론 민중가요와도 대립적이지 않았다.

<무궁화>의 경우 가사가 ‘박 대통령을 연상시켜’ 금지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게 전두환만의 생각인지 작가의 의도도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올해 열린 ‘광주오월음악제’에서 그녀가 <그때 그 사람>과 더불어 <무궁화>를 부른 사실은 설명하기 힘들다. 본인은 그저 “무궁화의 끈질긴 생명력을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엄마 심정을 담았다”고만 밝혔다. 하긴 더이상 설명하면, 흥미가 반감될 일이다. 이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소시적 <아이 러브 로큰롤>을 불렀던 여인이 후일 카바레에서 부르던 <사랑밖에 난 몰라>가 감정은 짠하지만 의미는 선명하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트로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는 양면적인데, 심수봉의 트로트는 그런 양면성을 극한으로 몰아가 신비롭게 만든다.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사진/ 심수봉의 문제작 ‘그때 그사람’이 수록된 (최현군과의 스플릿 음반) <그때 그 사람/백팔번뇌>(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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