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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미국 등돌린 유럽, 유럽 깔보는 미국

등록 2006-11-23 21:40수정 2006-11-24 18:02

400년간 팽창에만 신경써온 미국
전세계를 지배-복종의 관계로 변모
미국적 가치 탐탁지 않은 유럽이지만
어쩔수 없이 휩쓸리는 무력감에 씁쓸
두 지역을 같은 ‘서구’랄 수 있을까
안과 밖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는 “우리는 지구상에서 반미주의가 아마도 가장 활발한 이념인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현재 미국밖의 세상에서 얼마나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9·11 사건이 나자 전 세계는 미국이 당한 불행에 대하여 진심으로 애도하였으며, 일제히 야만적 테러행위를 비난했다.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라며 수천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미국인들과의 연대를 표명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함께 급격히 사라진다. 아쉽게도 미국은 9·11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1년 만에 세계로부터 동정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지금까지 같은 서방세계의 일원으로 굳건히 믿어왔던 유럽조차도 미국을 비난하는 세계적 행렬에 서게 된 것이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미국이 가진 DNA

역사가들은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음에 대하여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는 서구지배가 고착화하는 듯 보였다. 세계인들은 점차 미국을 자신 외에는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초권력 국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네오콘) 정치학자 로버트 케이건은 최근 한 신문 기고문에서, 첫번째 순례자가 아메리카대륙에 발을 디딘 이래 미국은 늘 팽창국가였으며, 그것이 영토에 관한 것이든 경제나 문화, 지리정책에 관한 것이든 이미 40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팽창해왔다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개입하고자 하는 욕구는 최근 현상도, 아메리카 정신에 대한 배반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미국이 가진 DNA의 일부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1989년부터 2003년까지 14년 동안 모두 아홉 번에 걸쳐 외국에 군대를 파견하거나 폭탄과 로켓포를 떨어뜨렸다. 이미 1997년 대인지뢰를 금지하는 오타와 조약과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협약안을 거부했으며, 2001년 교토 환경의정서를 무력화시켰다. 이라크와 관타나모에서의 아랍인 포로들에 대한 학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운용하는 세계 도처의 비밀감옥 존재의 확인, 제어되지 않는 군산복합체 등은 세계로 하여금 과연 미국이 민주적 법치국가인가조차 의심케 만든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제국의 몰락>에서 엠마뉘엘 토드는 “미국정부의 이런 정책들은 고전적인 모델이기는 하지만, 한 대륙차원의 국가로서는 걸맞지 않는 모델이다. 그것은 잠재적 적국들에게 무책임하게 보임으로써 오히려 그들을 더욱 겁먹게 하는 ‘광인의 전략’에 불과하다“고 쓰고있다. 소련이 사라지고 난 세상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전 지구적 자본의 통합은 국가적 이기주의를 강화시키면서, 전 세계를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불안하고도 불확실한 미래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동반자관계와 국제적 상호협약의 제 규칙들을 흔들어 지배-복종의 관계로 변모시켰다. 미국이 자국민에게 뿐 아니라 타 국가들에게도 자신들이 갖은 정치적, 경제적 질서와 원칙들을 강요하고, 그들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배려하지 못함으로써 생겨나는 적대감은 점차 반미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모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엇갈리는 시선들

유럽에서 미국에 대한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전쟁부터였다. 영국이 베트남전쟁에의 참여를 거부하였고, 서구의 좌파들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베트남전쟁을 통해 확인되었다고 보았다. 나아가 미국을 나치와 동일시하면서, ‘USA-SA-SS’ (미국-나치 돌격대-나치 친위대) 라는 슬로건까지 등장하게 된다. 중남미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 CIA의 지원과 기름이 나오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기꺼이 폭정의 당사자들과 거래하는 모습은 유럽에서 어렵지 않게 반미주의자들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경제나 안보에 있어 미국과 이해가 일치하는 한 이런 것들은 여전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들 소수 지식인들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사실은 9·11 이후가 아니라 1989~90년, 동서간 긴장의 완화로 생겨난 얄타체제(1945년)의 종말과 함께 이미 양 세력 간의 분리는 예고된 것이었다. 더 이상 공동의 적을 상대로 함께 협력해야 할 대상이 없어진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지금까지 유럽에서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독자성을 지켜왔다고 믿었으나, 놀랍게도 독일에서의 부시의 유럽방문 반대 데모는 프랑스보다 더 치열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도 지금까지의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과 관련해 대단히 불안해하고 있다. 서유럽 전체가 미국을 거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썼던 90년대 초반까지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반미주의는 점차로 유럽적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하여 독일과 프랑스간의 화해를 종용하였으나 이제 그 화해는 발전하여 미국과 경쟁하는 전략적 단위가 되어버린 것이다.

반미주의적 감정이 대부분 미국과의 문제라기보다는 유럽 자신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지적은 부분적으로 온당하다. 특히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금기시된 테마였을 때 반유대주의는 반미주의의 망토를 두르고 나타났다. 미국인과 유대인은 근대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돈과 이윤에 밝은 그들은 도시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뿌리없이 부단히 이동하는 존재들이다. 반 이스라엘적 입장은 곧 반미적 입장으로 쉽게 전환된다. 유럽인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미국이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미국은 이 지역을 끊임없는 분열과 전쟁의 상태에 놓음으로서 이득을 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밀려드는 수많은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는 곳은 유럽이다.

유럽인들은 19세기 이래 미국을 물질주의적이고, 비문화적이며 영혼이 없는 국가로 본 반면, 미국은 유럽을 퇴폐적이고 이념적이며 냉소적이라고 보았다. 유럽인에게 미국 대중문화란 세밀한 차이들을 밀어버리고 모든 걸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괴물과 같은 존재였다. 미국이란 문화도 없는 졸부와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유럽은 자신들에겐 부족한 그 무언가를 미국이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미국화와 미국적 삶의 방식 앞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들어가는데 대한 애증의 양가감정이었으며, 선뜻 미국적 모델의 성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력감, 질투심 등등의 복합체였다.

반복되는 200년 전 나폴레옹의 오해

모든 유럽인들의 공동의 조국이 되는 유럽을 꿈꾸었던 나폴레옹. 스스로를 프랑스혁명의 집행자요 완결자로 생각했던 그는 1807년 스페인을 정복한다. 그러나 곧 스페인 민중의 저항에 부딪혔으며, 이후 수년간의 전례없이 잔혹한 게릴라전쟁으로 빠져들어간다. 나폴레옹은 의문의 여지도 없는 시대의 진보에 대항하여 변변한 무기도 없이 덤벼드는 스페인 농민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모든 봉건적 권리들을 제거하고, 종교재판권을 없애버린다. 그밖에도 약 3분의 1 가량의 수도원을 철폐하고, 그 재산을 민간에 나눠주거나 국가 채무를 갚는데 쓴다. 그는 1808년 이러한 법률을 직접 마드리드에서 선포하였고, 개혁입법은 오로지 스페인 국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스페인인들은 나폴레옹에 의해 제안된 계몽헌법을 승인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나폴레옹은 자신이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음을 몰랐다. 나폴레옹의 ‘위로부터의 개혁’ 시도는 철저히 실패한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의 실패에 함몰된 것이나 오늘날 미국이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 사이의 유사성은 분명하다. 오늘이나 그때나 토착문화를 무시한 일방적인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좋은 유럽인’

니체가 처음 사용했던 ‘좋은 유럽인’이라는 표현은 유럽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다. 1886년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니체는 “아마도 제가 좋은 독일인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러나 좋은 유럽인입니다”라고 썼다. 니체는 세기의 질병으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지목했으며, ‘좋은 유럽인’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를 초월해 살아야 할뿐 아니라, 모든 애국주의적 속박으로부터도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그는 기독교와 합리적 과학, 역사에의 집착, 권력에의 욕구 등 유럽적 문화로 상징되는 것들에 대해 거리를 두고자 했다. 인권과 시민권, 민주주의와 법치국가는 프랑스혁명이 만들어낸 유럽의 훌륭한 유산이며 ‘좋은 유럽인’이 되기 위한 변치 않을 잣대일 것이다.

이진일/튀빙겐대 역사학 박사, 성균관대 강사
이진일/튀빙겐대 역사학 박사, 성균관대 강사
그런 ‘좋은 유럽인’들로부터 미국은 근대적 가치들을 받아들였고, 발전시켜 유럽에게 되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은 이제 서로가 상대방으로부터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게 되었음을 느낀다. 유럽이 보기에 미국은 공격적이고 선악 이원론적 사고에 기울어 있다면, 미국은 유럽이 세상을 너무 모르거나 유약하다고 본다. 미국은 자신들이 늘 전 지구적으로 생각함에 비해, 유럽은 여전히 자신의 지역문제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양 세력 간의 물리적, 이념적 차이는 더 이상 이들을 같은 서구(Western)로 묶기에는 이질적 요소들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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