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씨 등 문학가와 이현승 감독 등 영화감독들이 영화사 싸이더스와 출판사 문학동네 주선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신경숙(소설가) 이윤기(영화감독) 천운영(소설가) 백가흠(소설가) 권칠인(영화감독) 서하진(소설가·이상 왼쪽부터)씨가 1일 서울 대학로 맥주집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뒤 건배하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소설가·감독 40여명 한자리서 소통의 시간
소설와 영화. 서사(이야기) 예술을 대표하는 두 장르의 주인공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났다.
1일 저녁 서울 대학로의 한 맥주 전문점. 신경숙 은희경 방현석 천운영 박민규 김애란씨 등 소설가 20여 명과 임상수 임순례 최동훈 변영주 이현승 김대승씨 등 영화감독 20여 명이 자리를 같이했다. 전통 서사 장르를 대표하는 소설가들과 당대 종합예술의 꽃이라 할 영화감독들이 이처럼 대규모로 한데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자리를 주선한 것은 출판사 문학동네의 강태형 대표와 영화제작사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 두 사람은 3년 전부터 양대 서사 장르의 예술가들이 한데 만나서 말을 섞을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이런 자리를 준비해 왔다.
강태형 대표는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김형수 사무총장 등과 함께 서사 장르 예술가들을 아우르는 ‘한국서사연구회’(가칭)를 만들자는 의논을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서사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지닌 이들이 함께 만나서 고민도 나누고 발전 방향도 모색하자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차승재 대표도 “이야기꾼들끼리 서로 궁금한 것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술가들끼리 이처럼 격의 없이 만나면 어떤 자리가 될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문단과 영화계의 두 ‘거물’이 의기투합해서 마련한 이날 자리에는 30, 40대를 중심으로 양쪽 장르의 스타급 얼굴들이 대거 모습을 보였다. 은희경씨를 필두로 소설가들이 먼저 와서 기다렸고,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모임에 참가했던 영화감독들이 뒤늦게 나타나서는 자연스럽게 섞여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이날 회합에서는 특히 상당수 영화감독들이 한국 소설의 ‘이야기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그에 대해 소설가들이 미묘한 반발을 보이면서 약간의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현승 감독은 “영화 감독들은 대부분 청년기를 시와 소설을 읽으면서 보낸 ‘문청’(문학청년)이라서 문학에 대한 애정이 큰 편”이라면서 “그런데 최근 소설에는 이야기가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권칠인 감독 역시 “학교 다닐 때는 나름대로 한국 소설을 열심히 봤는데, 최근에는 일본 소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나마 서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소설가 서하진씨는 “서사가 없어진다는 말을 듣고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면서 “옆자리의 영화감독에게 ‘읽은 소설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참 대답을 못하더라”는 말로 반격(?)을 가했다. 소설가 김중혁씨도 “저는 감독들이 절대로 영화로 만들 수 없는 소설을 쓰는 게 꿈”이라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스타급 소설가들과 영화감독들이 모처럼 함께 만난 자리의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했다. 그 역시 대학 시절 시를 쓰던 ‘문청’ 출신이라고 밝힌 김경형 감독은 “처음엔 맞선자리에 와 있는 것처럼 어색했는데, 조금 지나니 색다른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 중 최연소인 김애란(26)씨가 “영화를 볼 때는 작품성이나 감독보다는 남자 배우를 먼저 본다”고 말하자 감독들은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누구냐, 소개시켜주겠다”는 말로 화답하기도 했다.
일종의 ‘옵저버’로 참석한 시인 이문재씨는 “소설만이 아니라 시에도 이야기가 있으며 영화로 만들 컨텐츠가 있다는 걸 명심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소설가 방현석씨는 “동시대를 호흡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장르를 한 발짝만 벗어나면 서로 소통이 안 되는 풍토가 아쉬웠다”며 “이런 자리가 자주 마련되어서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끼리도 고민을 나누고 전망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월의 첫날 밤 소설가들과 영화감독들의 최초의 만남은 자리를 옮겨 가면서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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